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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브랜드 리뷰/영화 리뷰

<인 타임>스타일이 아쉽다!

by feelosophy 201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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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타임>은 상업 영화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사실 주연 배우들로만 보자면 상업영화로 손색이 없습니다. 요즘 대세인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와 가수로 이미 최고점을 찍었던 저스틴 팀버레이크  가 주연을 맡았거든요. 아만다는 <맘마미아>에서 상큼한 귀여움을 <클로어>의 도발적 매력으로 성장시켜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스틴은 그의 원래 직업이었던 가수적 역량이나 그의 여성 편력 등에서 꽤 유명하였고 최근에는 <프렌즈 위드 베네핏>으로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이고 있기도 하지요.

그런데 <인 타임>은 상업 영화로서 가볍게 보이기 싫었나 봅니다. 화면 내내 회색 빛 우중충한 화면을 보여주고 화려한 화면에서조차 사람들은 무덤덤한 표정 일색이었거든요. 희망이나 즐거움은 온 데 간 데 없고 딱 사반 백 년만 주어진 삶만이 주어진 인생들에게 더 살기 위해 일하라!는 메시지를 우중충하게 설파하고만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너무 치고 때리고 부수는 영화는 조금 식상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리얼스틸>이나 <완득이>처럼 휴머니즘 넘치는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때 아닐까요? 굳이 3D나 4D의 기술력이 아니라도(그런 기술을 선보여도 좋지만) 그래서 더욱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더 가치있게 다가오는 시기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발상은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러한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굳이 내 팔뚝에 내 남은 삶의 시계가 똑딱거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통장잔고와 부채때문에 하루하루 힘겨운 일을 감내해야 하고 벌어서 갚아 나가야 하지요.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그렇게 먼 이야기는 아닌 것도 같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죠.



게다가 지나치게 많은 부를 가진 이들을 영생을 가진자로 치환시켜 놓은 것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가진 시간이라는 화폐에 의해 그들은 '실수로 '죽지만 않는다면 영생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들은 뛰어다니거나 밥을 허겁지겁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1분의 삶을 재촉하여 아들을 만나러 가는 엄마의 다급한 마지막 달리기와 대조적이지요. 조용하고 기품있지만 잔인하게...

영화를 보려고 마음을 먹은 건 이런 다분히 철학적인 메시지 안에서 납득할 만한 어떤 감동 혹은 희망을 전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흡사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스러움을 바랐는지도 모르겠구요. 사실 이 두 영화는 철학적인 지문을 찾아봄 직하면서도 상업적으로 많은 성공을 거두었으니 같은 계열의 영화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인 타임>은

<매트릭스>에 비하자면 스타일에 밀리는 것 같고 <터미네이터>에 비하면 히어로의 부재가 아쉽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영화 속에는 잘 생긴 남 여 배우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상업 영화스러움을 거부한 것 처럼 잔뜩 힘을 주면서도(만약 그럴 의도가 없었다면, 상업영화로서 전달하고자 한 부분에 어필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예쁘고 잘생긴 25살 성인들만 등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고나 각종 광고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누가 외할머니고 어머니이고 딸인지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잘생기고 아름다운 25살짜리 성인들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트릭스>와 아주 상반되는 것 같은데,  비록 아주 미인은 아닐지라도 딱달라붙는 가죽 수트에 머리를 기름발라 넘긴 트리티니의 단호한 에티튜트나 선글라스에 차이나 카라 검은 모직 코트 하나만 걸쳤을 뿐인데 쿵푸 손동작 하나로 상대를 제압하는 니오의 절도있는 걸음걸이같은 것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이 두 남여 캐릭터가 십년도 더 늦게 나온 <인 타임>의 모든 배우들을 올킬시켜 버렸다는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게다가 각성한 기득권자 한 둘에 의해 그 서글픈 진실을 깨닳게 된 주인공이 영화를 그다지 스펙타클하게 변화시키지도 못합니다. 왼쪽 팔뚝에 아로 새겨진 초록색 13자리 시계만 들여다 보며 아둥바둥 사는 삶에 무기력해질대로 무기력 해진 것이죠. 여기에서 기계장치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 위한 유기체로서 존재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뇌 속에 프로그래밍 된 허상을 진짜 세계로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빨간 약을 먹고 깨어났을 순간의 니오가 아쉽습니다. 그가 그의 현실에 안주한 삶을 뿌리치고 처절한 현실로 들어와서 세상을 바꿀 '니오'가 되는 그 순간의 그 고뇌가 <인 타임>에는 없었던 겁니다.

타임키퍼로 나온 킬리언 머피에게도 그렇게 몰입할 수 없습니다. 듣자하니, 이 인물은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와도 관련이 있고, 그렇게도 슬픈 루저들의 사회인 빈민가 출신이면서 그들의 탈출을 막고 서있습니다. 속편을 염두해 두고 그러한 이야기들이 중간에 툭!하고 튀어나왔겠지만, 아무래도 흥행으로 봐서 그 속편으로 이어지는 길이 순조로울 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힘없는 주인공이 무기력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매트릭스>에서 '니오'의 존재에 대한 무조건 적인 믿음을 가진 충직한 조력자나 <터미네이터>에서 처럼 미래에서 온 어떤 능력있는 인물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인 타임>에게도 주인공에게 추진력과 영감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기에는 예쁘기만한 여주인공은 많이 부족하지요.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 보자면, 구역마다 비싼 시간화폐를 지불하여야만 넘어갈 수 있는 톨게이트가 마치 계급의 경계를 의미한다는 것, 그곳을 마지막에 사람들이 걸어서 걸어서 가장 기득권층이 살고 있는 뉴그리니치로 향하는 발걸음에 어떤 메시지를 찾아볼 수 었었다는 것입니다. 당장의 대책이나 그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허무맹랑하게 끝이 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 경계를 지나 넘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어떤 큰 마무리가 될 수 있었을테니까요.

<인 타임>은 그래픽 노블 <설국열차>에서 넘을 수 없는 계급의 경계, 꼬리 칸에서 가장 앞칸으로 넘어가는 주인공의 여정처럼 <인타임>의 여정에는 그렇게 스펙타클한 드라마는 없었고, 주인공의 매력을 반의 반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적어도 시간에 메여 혹은 돈이나 그 외 다른 것에 묶여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잃거나 잊고 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과 그 것을 실천하기 위해 경계를 넘어 앞으로 전진하는 추진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실망만 하기에는 아쉽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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