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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지 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며칠만 지나면 애플이니 삼성이니 구글이니 MS니 돌아가면서 무슨 외계어라도 되는 듯한 말들로 새소식을 발표를 합니다. 무엇을 내놓았고 누구랑 누구가 손을 잡아서 이러이러한 것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 하고 말이지요. 지금 이순간에도 새로운 SNS가 등장하고 글과 사진과 동영상으로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친구들을 찾아보라 합니다.

항상 변화의 경계에는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불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지난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때를 추억하려 합니다. 그래서 요즘들어 7080이니 세시봉이니 하면서 예전 노래들이 다시금 유행을 타고 그 시절 인기를 누렸던 가수들의 얼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가 봅니다.

 



이러한 트렌드를 애니메이션에서도 접하게 되었네요.

한국전쟁이 있을 때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니까 아마 60년대 후반의 이야기입니다. 한류의 인기가 일본 땅에서 후끈 달아오르고 일본 유명 연예인들의 이름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기는 했지만 1900년대 초반 한국은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 정서를 가진 점에서 애니메이션 스토리와는 상관 없이 배경만으로 우리 나라에서 이 영화의 개봉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약간의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젊은 층이라 해도 국사시간 사회시간 혹은 뉴스에서 접하는 것들은 아직 과거의 한 점이라고 밀어버리기는 찝찝한 감이 있습니다. 중국도 다를 바 없구요.

반전, 자연주의라는 측면에서 미야자키의 세계관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의 아들에게 감독이 넘어간 뉴지브리작품은 어쩌면 너무 소박하고 다시 일본 안으로 침잠하려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센과 치히로>에서 기세 좋게 일본을 세계의 것으로 만들어 내었던 그의 아버지와 달리 일본만의 문화를 그들 속에서 소비하지 않고 왜 꺼내 나왔냐는 질문을 받을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물론 지브리는 곧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라는 생각은 하더라도 그의 작품이 지금의 지브리를 만들어 낸 이유는 분명히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잘 짚어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야자키 고로는 자신의 색깔을 찾되 기존 지브리의 색깔을 이질감 없이 드러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었으리라 봅니다.

영화 시작부터 흰쌀밥과 나또라는 말로 일본의 밥상을 차리는 노랫말이 흘러나오고 일본의 다다미나 의상 그리고 고등학생들의 복장부터 어느것 하나 일본스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차라리 영화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애니메이션의 강점 깨끗하게 포기해버렸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피해를 입고 또다른 아픔을 겪고 있었을 우리 한국의 실정과는 달리 일본의 평범한 그들도 그들 나름의 힘든 삶과 대면하고있었다는 것은 조금 신선하기는 합니다. 착한 여자 아이의 지고 지순한 '아비찾기'는 결국 멋진 남자친구로 되돌아 왔다는 해피엔딩이 안도하게 합니다. 깃발을 올리고 그 깃발에 대답하는 설레는 로멘스나 학교의 전통과 가치를 적극적으로 지켜나가는 과정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막장 드라마가 등장하더니 너무 급작스레 해피엔딩으로 배를 태우며 끝이 나는 것에 무언가 소소한 행복감은 있되 또다른 지브리를 접했다고 생각하기 어렵게 합니다. 차라리 얼마전 '별을 쫓는 아이'가 더 지브리같아. 라고 속삭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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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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