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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8, 7 ... 3, 2, 1, 발사~!

카운트다운은 로켓의 발사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거꾸로 세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기억합니다. 무언가 도래하고 있음을, 그 준비를 하라는 뜻의 '3,2,1' 거꾸로 세기. 그래서 '카운트 다운'은 심장을 와락쥐는 느낌의 긴장감을 만들어 냅니다. '카운트다운'을 제목으로 한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가슴 졸이는 장면들을 만들어 냅니다. 숨막히는 액션으로,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상황으로, 피끓는 인연으로 말이지요. 

우선 주인공 정재영의 액션신은 일품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을 하겠다는 철없는 한 남자에게 '후회나 반성보다 상대방의 심장에 칼을 꽂으라'고 훈계하고, 양아치쯤되는 변두리 사장에게 사다리를 타고까지 올라가 빚을 갚으라 들이대는 무작정인 그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싶습니다. 누구든 덤비면 말이든 행동이든 상대를 넘어뜨리는 깡패같은 태차장. 그러고 보니 그의 전기 충격기도 무척이나 훌륭한 무기로군요. '지지직~' 불꽃 튀기며 으르렁대는 전기충격기는 일단 시청각적으로 상대를 압도하지만 칼이나 총처럼 심각하게 생명의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습니다. 추심원이라는 공적인 일을 하지만, 그래서 막장일상을 마주한 사람을 대하는 태건호의 인간미없는 경고를 담당하는 무기로 전기충격기가 손색없습니다.

볼거리는 태건호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신 뿐만 아닙니다. 차를 타고 벌이는 시골 시장에서의 추격신은 이 영화의 액션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장면은 흔히 이야기 하는 헐리웃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없어 보입니다. 시골의 여유만만한 일상에 뛰쳐들어 온 두 차의 숨막히는 추격전은 영화 초반 <카운트다운>가 액션 영화인 체 하는 데 많은 힘을 실어줍니다. 무료하고 무심한 듯한 노인의 반박자 늦은 반응에 희미하게 웃음을 짓게 만들어 내는 '숨막히는' 추격전은 신나게 차하연과 태건호의 두 개의 운명을 하나의 새끼줄로 꼬아놓았습니다. 연변 흑사파 잡당들의 추격을 멋지게 헤치워내는 태건호의 묵직한 연기는 액션영화의 주인공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낚시, 즉. Hook입니다.

사실 <카운트다운>은 헐리웃 액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잃었던 부정과 모정을 되찾는 운명의 로드무비쯤입니다. 그래서, 신나는 액션영화를 보고자 가슴 뛰며 영화관을 찾은 남자친구는 울었고, 시큰둥한 여자친구는 감동에 울었을, 약간의 신파가 더한 한국영화란 말입니다.

 




두 개의 아이러니

태건호는 채권 추심원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있습니다. 차하연은 사기꾼입니다. 그리고 딸이 하나 있습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영화 속에서 이 두사람의 기가 막힌 공통점은 두 개의 나란한 반복과 복선을 만들어 내면서 영화에 몰입을 유도해줍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뒤에서 전투적으로 팝콘을 먹던 철없는 어른들의 얼굴을 영화 후에 꼭 확인하리라는 다짐으로 시작한 이후로도) 태건호가 '왜 저렇게 굳이 살려고 하는가'였습니다. 사실 삶의 의미나 행복과는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병원에서 '이제 몇달 못산다'고 이야기 해도 그저 시크하게 '그렇습니까?' 해야 맞지 않나 싶었거든요.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잖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나 해야 할 일이 있거나 그런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무작정 사표던지고 자기를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니요.

그리고 중간 갸우뚱이 하나 더 추가 되었습니다. 그 것은 무엇이 차하연에게 끝없는 모정을 용솟음치게 만들었나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녀는 숨쉬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거짓인 섬뜩하리만큼 얄미운 여자입니다. 게다가 오랜기간 교도소에 있을 때만 해도 아무 일 없었는데, 죽자고 덤벼도 시원찮은 판에 살자고 덤비는 태건호 하나 더해졌다고 세상이 갑자기 들썩거리느냐 말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아이러니가 만났고, 믿을 수 없는 여자를 끈질기게 살려내어 병원으로 향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영화를 해독하려는 나를 만나게 해버렸어요. 두개의 아이러니가 만나 어떤 황당시츄에이션을 만들어 내는가 하고말이지요.


두 개의 아이러니는 두 개의 잃어버린 퍼즐 조각

영화는 조금씩 착한 영화가 됩니다. 아무 남자와도 몸을 섞고 돈만이 세상을 구원하는 성수라도 되는 양 엄청난 에너지를 내지르던 여자는 그 아이를 낳았을 꼭 같은 때의 모습을 한 딸앞에 무너집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보는 태건호는 마침내 아들을 되찾게 되는 것이죠.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에너지를 가했거나 남자의 애닳음이 여자를 사람으로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자가 가지고 있는 심장이 남자의 아들의 심장이라는 단서는 그런 훈훈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개연성을 주기는 합니다. 그래서 <카운트다운>이 액션영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두 남녀는 비로소 서로를 만나 자신의 자리를 바로 보고 착한 엄마와 아빠가 된 것입니다.

남자는 아들을 되찾기 전에는 죽을 수 없었고, 아들을 되찾기 위해 그의 흔적을 찾아 사람들을 만나고 다닙니다. 이대로 먹먹하게 죽을 수만은 없는, 기억할 수 없지만 무언가 살아있을 때 꼭 해야 할 대답이 있는 것 같은 그 찝찝하고 안타까운 심정에 그를 그리도 삶에 집착하게 만들었던 거죠. 뿐만 아니라 여자는 빚을 진 돈으로 빚을 갚는 돌고 도는 세상에서 자신의 망가진 인생이 시작된 그 시점의 딸을 보는 순간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온갖 화려한 옷을 입고 신나게 웃어대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고 비로소 그것을 채우고 싶어진 겁니다.



뉴 미디어 시대의 시작이 무엇부터 시작이었는 지 아시나요?

저는 그 시작이 바로 포터블 디바이스가 생겨난 이후에 증폭되었다고 봅니다. 포터블,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디바이스. 기기죠.
우리는 '워크맨'으로 알고 있는 카세트테이프플레이어는 꽤 산다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파OOO,이나 소O의 제품으로 제법 슬림하고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녀석들도 있었고, 나중에는 그것이 CD플레이어로 그리고 좀 더 이후에는 MP3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스마트폰으로 흡수되어 버린.

휴대용 카세트테입플레이어를 쥐고 아들과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남자의 이야기는 현재의 삶에서 답답하게도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여자를 감화시켜내었는데,(그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속의 아들의 어눌하지만 다정한 목소리와 피아노 소리는 관객의 눈물샘을 다시 자극합니다. 저는 이런 신파나 스토리 혹은 피아노 통통 거리는 착한 음악을 통해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을 왜 알면서도 당하고 마는 것인지 속이 상할 지경이었어요.
어쨌거나,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목소리, 음향, 그리고 공허한 공백까지도 남자를 다시 심장이 뛰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었고, 그 과거의 소리가 지금의 남자의 삶을 결정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또 그것은 그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고 이영화가 결국에는 해피엔딩이 되도록 만들어준 두 번째 중요한 소품이었다는 것. 아니, 어쩌면, 또다른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렵니다.


덧,
오만수와 그 떨거지들은 흡사 우화를 보는 느낌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도 악랄하지 않고 무섭지 않은 깡패녀석들은 이 영화의 주제가 두 남여의 자리 되찾기라는 점을 볼 때 적절한 수위였지않나 싶어요. 오만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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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심원이 하는 일은 공적인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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