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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기획/문화기획자의 단어장

VR 콘텐츠의 세계, 자유롭거나 귀찮거나

by feelosophy 201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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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콘텐츠의 세계, 자유롭거나 귀찮거나

가상현실은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이미 몇천년 전 동굴 벽화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게 가상현실입니다. 다만, 요즘 가상현실은 다분히 '그럴만한 것'이라는 인간의 고도화된 상상력으로 만들어지는 가상의 것이 아닌, 직접 눈앞에 현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기술의 발달에 관심이 많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낱 기술때문에 인간의 고도의 상상력이 가려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누구든 눈에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비슷한 것을 보고 비슷한 생체반응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VR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 것중에 하나라면, 앞서 말한 생체 감각을 속여 진짜라고 여기게 만드는 현전감(Presence)입니다. 이 현전감은 우리 자신을 새로운 환경안에 온전히 놓아두고 자유롭게 우리 앞의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둘러 보는대로 환경이 변하고 적절한 반응을 통해 체험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기존 미디어들의 특성과 비교할 때, 여러가지로 다른 양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가장 익숙한 VR콘텐츠 중에 VR영화는 360도 환경에서 향유자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이 중점입니다. 직접 상호작용하는 경우는 드물고 단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향유자 스스로 시야의 범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으로 자유도가 한정되죠. 한편 VR게임의 경우(저는 VR게임이 VR콘텐츠의 특성을 가장 대표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가르는 것도 점점 의미가 없어질 테지만요.) 직접 쏘고 만지고 움직이며 이야기를 향유자가 스스로 완성시켜나간다는 점에서 자유도가 수직 상승합니다. 물론 컨트롤러나 시뮬레이터 등의 개발이 더 진전되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VR영화에 비해서 새로운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VR의 특성을 더 즐길 수 있도록 합니다. 이 부분이 향유자들을 몰입시키는 매력적인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VR미디어의 특성과 콘텐츠의 특성 궁합이 잘맞아 떨어질수록 향유자들은 미디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입니다. 영화는 내가 기존에 가지지 못한, 혹은 가질 필요가 없는 정보나 가치를 대리경험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만드는 고도의 향유라고 본다면 직접 움직여 그 행위와 체험을 잘 해낼 가능성이 적습니다. 오히려 그런 행위나 생각을 잘하는 대상들의 움직임을 충실하게 읽어냄으로써 더욱 재미를 느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다소나마 수동적인 향유가 많은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물론 직접 경험을 통해 신체적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 경우라든지 극한의 감성을 끌어내야 하는 장면이 많은 영화라면 적극적인 경험을 추가하여 VR영화만의 특성을 끌어올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까 VR이라고 해서 꼭 자유로운 체험만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고요.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VR이 공간 속에서 직접 자유로운 두리번거림과 개인적인 체험이 가능한 미디어라면 판단도 누군가의 프레임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떠오릅니다. 

아래는 프레임으로 재단된 사실과 다른 정보전달을 꼬집은 유명한 그림입니다. 실제 공격하는 사람과 공격받는 사람이 전복되는 모습을 절묘한 프레이밍으로 사실인냥 전달할 수 있다는 경고성 이미지인데요. 만약 우리가 이런 프레임이 없이 직접 그 현장 속에서 목격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완벽하게 사실을 인식할만한 기본적인 상식과 가치관이 있어야하겠지만, 앞서 프레임에 갇혀 판단해야 했던 경우에 비해 더욱 사실에 근접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와 같은 장르가 VR콘텐츠로 전환되는 실험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깨어있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우리는 직접 움직이고 귀찮지만 스스로 자유롭게 움직여야 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나봅니다. 


미디어는 기술의 발달만큼이나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미디어에 대한 익숙함을 필요로 합니다. 직접 보고 만지고 움직이고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일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떠먹여주던, 그래서 편안한 소파에 파묻혀 팝콘만 먹으며 눈만 주시하면 되었을 브라운관은 이제 일어나서 직접 만지고 말하고 던지고 둘러보며 세상을 경험하라고 합니다. 내가 만들어 내는 세상에 점점 흥미를 느끼고 빠져들 가능성은 크겠지만 그것도 일단 소파에서 일어나야 하는 문제이므로, 자유로움이 승리할 지 귀찮음이 승리할 지는 아직은 모르겠네요. 


가끔씩 VR미디어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저리 해볼 참입니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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