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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브랜드 연구소 | 비로소1032

[시네마 쿼드런트] 5. 수술대 위에서 찾은 사람의 자리: 네 가지 삶의 지도 [시네마 쿼드런트: Cinema Quadrant]'쿼드런트'는 원을 사등분한 사분면을 의미하는 수학 용어입니다. 정답을 골라야 하는 사지선다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갈 방향을 사유하는 네 가지의 길입니다.영화라는 거울을 사분면의 좌표 위에 올리고, 그 안에서 우리 삶의 비로소 가치 있는 좌표를 찾아봅니다. 병원은 가장 적나라하게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는 곳이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마지막 경계이면서, 거대한 병원 조직의 힘과 힘없는 개인의 의지가 부딪히는 사회적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의학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는 단순히 병이 낫는 과정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이성적인 판단이 지배하는 수술실에서 가장 뜨거운 삶의 욕구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단단한 조직의 벽 앞에서 사람의.. 2025. 12. 29.
〈기술을 가진 아이〉 03-3. 복사로봇 배움이 대신 이루어질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복사로봇은 사람을 그대로 닮은 존재를 만들어 대신 행동하게 하는 도구다. 진구는 숙제도, 연습도, 귀찮은 일도 복제된 로봇이 처리하도록 한다. 적당히 조립하고 자기 머리와 선을 연결해두면 로봇은 갑자기 진구처럼 행동한다. 이 로봇은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아이의 몸은 그 외에 다른 공부를 하거나 발전적인 시간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을 자고 놀러 나간다. 생각이 막히는 순간, 틀렸다는 감각, 다시 시도해야 하는 망설임은 복제본에게 넘어간다. 아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대가없이 돌아온 결과와 배움 없는 시간이다. 이 도구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배움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우리는 흔히 점수와 제출물로 학습이 잘 되었는가를 판단한다. 복사로봇은.. 2025. 12. 28.
〈기술을 가진 아이〉 03-2. 실물도감 지식을 꺼내는 것과 경험하는 것의 차이실물도감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읽는 대신 책을 털어 내듯 두드린다. 그렇게 원하는 사물이나 생물이 있는 페이지를 뒤집어 치면, 그것이 실물 크기로 눈앞에 나타난다. 그림 속의 음식은 실제로 먹을 수 있고, 자동차는 운전할 수 있으며, 생물은 살아 움직인다. 지식은 설명이나 이미지로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현실로 튀어나온다. 안경원숭이를 닮았다고 놀려도 안경원숭이가 어떻게 생긴지 모르는 진구는 화를 내지 못했는데 실감도감으로 안경원숭이를 마주하자 깜짝 놀란다. 이 도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학습에 바로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 그런데 실물도감에서는 그 순서가 바뀐다. 먼저 결과가 주어지고, 경험은 그 다음에 따.. 2025. 12. 24.
〈기술을 가진 아이〉 03-1. 암기빵 저장된 기억은 지혜가 되는가시험을 앞둔 노진구는 늘 그렇듯 불안하다. 공부는 하지 않았고, 시간은 부족하다. 국어와 수학 시험이 겹친 날, 그는 노력 대신 다른 길을 찾는다. 도라에몽이 꺼내든 암기빵은 그 욕망에 정확히 부합하는 도구다. 책에 찍어 먹기만 하면 내용이 그대로 기억된다. 이해도 필요 없고, 반복도 필요 없다. 기억은 먹는 순간 몸 안으로 들어온다. 암기빵은 지식을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섭취 가능한 물질’로 바꿔놓는다. 기억은 더 이상 축적의 과정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몸에 머무는 데이터가 된다. 진구는 이 도구를 통해 공부하지 않고도 점수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시험 범위는 많고, 빵은 계속 먹어야 한다. 결국 과도한 섭취로 배탈이 나고, 효과는 사라진다. 먹은 만큼 기억.. 2025. 12. 23.
[시네마 쿼드런트] 4. 크리스마스 로코가 매년 사랑받는 진짜 이유: 사랑과 소속감을 찾는 네 가지 길 [시네마 쿼드런트: Cinema Quadrant]'쿼드런트'는 원을 사등분한 사분면을 의미하는 수학 용어입니다. 정답을 골라야 하는 사지선다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갈 방향을 사유하는 네 가지의 길입니다.영화라는 거울을 사분면의 좌표 위에 올리고, 그 안에서 우리 삶의 비로소 가치 있는 좌표를 찾아봅니다.크리스마스, 일상의 중력이 멈추는 무중력의 틈새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익숙한 영화들을 다시 찾게 된다. 이는 크리스마스가 일상을 지배하던 견고한 관성이 잠시 멈추는 것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시 멈춰 서는 이 시기에는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관계의 공백이나 내면에 꽁꽁 숨기고 있던 결핍을 선명하게 비춘다. 특히 이런 붕 뜬 사이에서 영화들은 공간이 바뀌고 관계를 .. 2025. 12. 23.
[시네마 쿼드런트] 3.이름 없는 존재에서 역사의 주역으로: 흑인 여성의 주체성 분석 [시네마 쿼드런트: Cinema Quadrant]'쿼드런트'는 원을 사등분한 사분면을 의미하는 수학 용어입니다. 정답을 골라야 하는 사지선다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갈 방향을 사유하는 네 가지의 길입니다.영화라는 거울을 사분면의 좌표 위에 올리고, 그 안에서 우리 삶의 비로소 가치 있는 좌표를 찾아봅니다. 이 영화들은 20세기 중반 미국 흑인 여성들이 겪은 미국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방식은 21세기 (지금 여기 아시아를 사는)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때로 의 셀리처럼 자아를 찾아야 하고, 때로 의 캐서린처럼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연대기의 기록이 아니라, 주체성을 발현시.. 2025. 12. 23.
〈기술을 가진 아이〉 03. 기억과 학습 서랍 속에 숨긴 실패, 기술이 제안하는 지름길노진구는 시험지를 숨긴다. 빵점짜리 점수가 적힌 종이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으며, 엄마의 눈을 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비밀은 늘 탄로나고, 야단이 이어지며, 아이는 다시 고개를 숙인다. 도라에몽의 세계에서 이 장면은 반복되는 일상이다. 공부를 소홀히 한 아이, 들키고 혼나는 아이,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하는 매혹적인 기술의 유혹. 이 세계에서 학습은 언제나 '실패'라는 쓰라린 자리에서 출발하고, 기술은 그 실패의 흔적을 가장 빠르게 지워줄 수 있는 구원자처럼 나타난다. 도라에몽이 꺼내놓는 학습 기술들은 늘 명확한 목적지를 향한다. 암기빵을 먹으면 고통스러운 암기 과정이 사라지고, 실물 도감에서는 책 속의 지식이 곧바로 현실로 튀어나와 눈앞에.. 2025. 12. 22.
〈기술을 가진 아이〉 02-4. 가공수면 펌프 현실 위에 입혀진 가짜 바다: 환경 가공의 마법도라에몽의 도구 중 '가공수면 펌프'는 참으로 재미있는 장치다. 자는 동안 이 펌프를 작동시키면 바다가 아닌 곳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펌프로 퍼 올린 '가짜 물'은 순식간에 골목과 마당을 채우고, 평범한 동네는 어느새 거대한 바다로 변한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잠수를 하며 진짜 바다에 들어온 것처럼 일렁이는 달빛을 따라 헤엄친다. 하지만 이 물은 만져지지도, 옷을 적시지도 않는다. 특수 고글을 끼고 오리발을 신어야만 헤엄을 칠 수 있다. 조작을 멈추는 순간 가짜 바다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원래의 메마른 풍경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도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현실을 직접 파괴하거나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장소를 옮기지도, 시간을 건.. 2025.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