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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다 말다하는 조용한 늦은 아침에 국립극장으로 가는 길이 무척이나 설레였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사람들과 익숙하지 않은 공연을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벌써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달 한번, 화요일 11시부터 12시까지 <정오의 판소리>가 국립극장에서 열립니다. 이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 화요일 정오라도 공연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저처럼 판소리등 우리 전통문화에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영대교수님이 친근하고 편안하게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시나위 합주 : 가야금, 아쟁, 거문고를 구별하실 수 있으세요?
어렷을 적, 장구며 꾕과리며 북이며 신나게 치면서 운동장을 돌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장구를 맡았었는데 양가죽과 말가죽의 그 튕김소리를 그 당시에야 잘 구별할 수 있었겠냐만은 총 연습 때 옷까지 갖춰입고 연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시나위는 한국 무속음악의 일종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기악곡(위키백과)이라고 하는데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남부의 가락악기 무속음악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날 공연에서는 해금, 대금, 피리, 장구, 가야금, 아쟁, 거문고가 한데 어우러져 덩실덩실 어깨춤 유발 화음이 탄생했죠. 저는 음악에 아는 것이 별로 없는 편이라 이날 공연도 앞자리 앉아있던 어린 소녀만큼 생경하고 신나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앞에 보이는 가야금과 아쟁과 거문고를 어떻게 구별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죠.
뒷자리 왼쪽부터 해금, 대금, 피리, 장구
앞자리 왼쪽부터 가야금, 아쟁, 거문고입니다.
앞자리 왼쪽부터 가야금, 아쟁, 거문고입니다.
백과사전의 도움을 받아보자면 가야금은 오동나무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12줄이 안족에 받쳐놓여져 손가락으로 뜯어 소리를 내는 악기이고 우륵이 신라에 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거문고는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여만든 울림통에 명주실을 꼬아 6줄을 매고 술대로 쳐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왕산악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쟁은 고려때부터 전해오는 악기로 거문고와 같이 앞면은 오동나무 뒷면은 밤나무로되어 있으며, 저음악기로 7현 혹은 9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네요.
세 악기가 비슷해보여도 그 연주방법(손으로 뜯거나, 술대로 치거나, 활로대 그어서)과 현의 수가 달라 그 음색도 많이 다르더라구요. 그 중에 아쟁은 첼로를 연상하는 음색으로 꽤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음색이 가장 듣기 좋았습니다.
시나위 악기는 신명나게 합주를 하다가 중간중간 독주들이 이어지는데 우리가락 하면 그저 막연하게 신명나고 흥겹다고만 생각했었 것을 달리해 주었습니다. 막상 들어보니 시나위는 사람들을 음악에 조용하게 젖어들게 만들었다가 조금씩 요동치면서 사람들을 흥분하게도 만들 수 있는 아주 세련된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특히나 장구는 다른 악기들의 리듬감을 조율하는 지휘자의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처음엔 장구 혼자만 타악기라서 보조적인 느낌을 갖었었지만 연주중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연주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판소리 : 심청가 中 동량 젖 얻어 먹이는 대목
혹시 잇몸치료제 <이가탄> 광고를 보신 적이 있나요? 그 유명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제 주위에서는 고기 먹을때 그 리듬과 몸짓을 곁들이기도 하는데요. 이 공연에서 구성지고 간들어지고 한편으로는 카리스마넘치는 창을 해주신 이영태님이 그 노래의 주인공이라고 하시네요. 직접 노래 불러주셨는데 참 새롭더군요. ^^
중간에 잠깐 앞쪽으로 나오셔서는 아직 공연에 동화되지 않은 관중들까지도 공연속으로 들어와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얼씨구, 잘한다, 그렇지, 어이~ 추임새도 직접 해보도록 이끌면서 공연을 더욱 활기있게 해주셨어요. 얼쑤! 멋져요~
창극 : 심청가 中 심청 인당수 팔려가는 대목
뮤지컬을 보면서 혹은 오페라를 보면서 무대위의 저 사람들은 배우라고 해야하나 가수라고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노래를 아주 잘해야 하고 그 가운데 극에 몰입시킬 수 있는 표정연기, 몸짓이 유연해야 하므로 더더욱 되기 힘든 직업인 것 같았습니다. 처음 접한 창극에서 이같은 느낌을 또 받았습니다. 앞서 판소리를 들려주셨던 분들도 풀썩 앉거나 슬픈 표정으로 관중을 응시하거나 부채를 펼쳤다 접으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창극은 본격적으로 소품을 활용하고 동선이 크고 기본 대사들이 섞이면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열어주고 있었습니다.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드리기 위해 선원들에게 공양미 삼백석을 댓가로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로 합니다.
제대로 판소리를 듣거나 하지 않았지만, 평소 저는 심청이가 과연 효녀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 이유는 봉양해야 하는 아비를 두고 어떻게 멀리 그것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무책임하게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정말 눈이 떠지지 않으면 어쩌지? 그 동안 어떻게 살까? 그렇게 아버지를 방치하는 것은 과연 효도인가.
그런데, 극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누군가에게는 목숨까지도 바꿀 수 있는 절대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라면 심봉사에게는 눈을 뜨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가치이고 그것을 꼭 이뤄드리고 싶은 것이 심청이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 그 가치가 다른 사람들이 주판알 튕겨보면 맞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과감히 따르고 맞춰드리고자 하는 것이 효도 아닐런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심청전이 자꾸 마음을 줘락펴락하는 이유는 이런 갸륵한 심청이의 희생(아비의 소망을 이뤄주고자 하는)이 너무 비극적이라는 사실이지요. 심봉사가 보고자 한 아름다운 세상은 바로 심청이, 자신의 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세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심청이가 없으니 그 세상은 보이든 말든 상관없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에서처럼 사랑하는 연인의 머리카락을 위해, 시계줄 없는 시계를 위해 각각 머리를 자르고 시계를 팔았던것과 같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식과 안타까움에 그들의 바보스러움을 탓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 이야기들의 흥행을 만들어준 중요한 요소이기도하겠지만은요.
심청이가 떠나게 된날, 심청이가 진수성찬을 심봉사에게 전하고 사실을 고한후, 선원들을 맞이하는 심봉사의 애타는 마음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눈물도 조금 났지요.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했고, 그 구성진 억양과 노랫가락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민요 : 흥타령-육자배기-자진육자배기-개구리타령
기악연주에서 기악과 판소리를 함께 뒤이어 연기까지 더해져 창극을 이루어 나가는 공연 과정이 좋았습니다. 한 점에서 시작해서 확장해 나가면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게 단단하게 해주어 공연을 보는 관중들이 쉽게 그 공연을 따라갈 수 있었거든요. 연주자들의 전문성을 처음에 보아주어서 그런지 특히 제가 마음에 들었던 아쟁 연주 부분은 창극이나 민요가 이어지는 순간에도 그 쪽으로 눈을 돌려 연주자들이 배경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민요를 부르는 네 분의 소리꾼들은 관중에 미소를 보내기도 하고 한꺼번에 부채를 촤락! 펼치면서 집중시켰다가 양팔을 휘저으며 리듬을 타기도 하면서 구성진 가락을 들려주었습니다.
여담이지만, 그 가락과 음색 그 노래 기교에 매료되었다가도 입고 있는 한복이 너무 이뻐서 어디서 구할 수있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요.
흥겨운 노래자락을 듣고 뒤에 스크린에 가사를 적어 보여주고 관련 이미지를 드리우니 제가 이 노래를 마치 아는 사람인냥 흉내내고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그 꺾이고 늘어지고 울림을 주는 그 기교는 따라가지 못했지만, 가사 속에 비유와 해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조금 전 창극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하고 덜덜했던 마음도 진정이 되고 마침내 즐길 수 있게 되어, 결국은 공연을 너무너무 좋아하게 되었네요. 공연을 보면서 희노애락을 이리 느낄 수 있다니요.
공연에 오길 너무너무 잘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대해주신 문현주선생님, 한덕택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앞으로도 종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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