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의 '쉬리'(1999)가 나온 지 십 년도 훌쩍 지났습니다. 이 번에는 그 첩보 요원이 베를린에서 베테랑 요원을 연기하죠. 그에게 이제는 국가를 지킨다는 사명감보다 때 지난 '빨갱이 노름'을 하거나 매일매일 돈벌러 다니는 '일'로 그렇게 살아냅니다. 대단한 국제관계보다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부하의 안부가 걱정이고 절친CIA요워의 죽음이 분할 뿐입니다. 그에겐 이제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애틋하고 끈적한 스토리는 배재됩니다.
반면, 하정우는 '추격자'이후로 엄청난 체력 고갈을 경험한 듯 합니다. 뛰고 던지고 쳐박히고 메달리면서 영화속 상처는 분장이 아닐지도 모르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분명히 그는 멋지게 등장했답니다. 마치 본시리즈의 맷데이먼이나 제레미레너처럼 신체능력이 탁월하고 두뇌회전이 기민하죠. 그렇지만 그 가운데 부인인 전지현에 대한 애정은 숨기지 않습니다. 영화 마지막의 전지혀을 들쳐업고 가다 넘어지기를 거듭하는 장면에서 애절함이 절로 묻어나거든요.
사실 이 영화는 능력을 갖춘 주인공이 모험하는 다른 시리즈 영화들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제목에서 이야기 한 본시리즈(본아이덴티티, 본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본 레거시)나 007시리즈 같은 첩보물과 많은 부분의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죠. 그래서 관객들은 그 익숙한 스토리덕에 '베를린'에 적응이 빨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베를린이라는 남과 북이 아닌 제 3의 공간에서 우리나라 말이 아닌 독어나 영어가 심심치 않게 사용되며, 남북 뿐아니라 미국과 아랍 및 이스라엘의 첩보 단체까지도 등장하는데에서 영화를 우리 일상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뜨려 버립니다. 분명 우리의 분단상황을 소재로 삼고 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스펙타클함에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고, 긴박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제때 승차할 수 있었죠. 그야말로 헐리웃영화 못지 않은 한국영화라기보다는 그냥 한국판 헐리웃영화라고 해야할 부분입니다.
사실 전지현이 베란다 난간을 뛰어 넘는 장면을 예고편에서 봤을 때에는 '도둑들'에서 뚝심있게 액션을 선보이던 그녀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를린'에서는 주인공 하정우의 행동유발을 위한 '희생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였죠. 물론 그 안에서 여인과 엄마, 아내라는 가족과 이념과 조국이라는 큰 틀 사이에서 고뇌하는 섬세함을 선보였고 그 점이 전지현이라는 배우에게는 참 다행이 부분입니다.
조력자를 갖고 희생자를 통해 자신의 이념과 생활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며, 적대자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조력자 희생자 그리고 주인공의 감정이 폭발한다. ... 라는 기존 헐리웃 영화스러운 공식이 팡팡 터진. 보기에 군더더기 별로 없었던 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죠. 보고 난 직후에는 '와아~ 잘 만들었다. 하정우 액션신이 참 실감났다. 한석규의 농익은 연기에 박수가 절로 나오더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이 말하고 싶었다는 시대와 이념의 큰 격변 속에서 살아가느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다소 빗나간 듯 합니다. 그들의 감성의 깊이를 들어가보기도 전에 벌판을 헤메고 로프에 메달려 유리차을 부수는 통에 기억에 잘 남지 않아요. 그저 블라디보스톡으로 편도행을 끊은 표정수의 다음 행방이 궁금해지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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