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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브랜드 리뷰/영화 리뷰

<죠의 아파트> 우월한 바퀴벌레들의 세상

by feelosophy 201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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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죠의 아파트>.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지(1996)는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머릿 속에는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바퀴벌레는 모기, 파리와 함께 인간들을 못살게 구는 3대 해충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모기나 파리와 달리 바퀴벌레들은 도심 속의 인간과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이 모두 중복인 경우가 많아 가장 질색하는 곤충이지요. 머리가 없이도 며칠을 살 수 있고, 영하의 온도에서도 그 질긴 생명을 유지하기도 합니다. 암컷의 경우에는 한번의 교미로 평생 알을 낳기도 하고 한달을 먹지 않아도 살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공룡시절부터 살았다는 바퀴벌레는 공룡이 멸종한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 번성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관련 글]

한편 인간은 지구의 주인인 것인 냥 지난 몇 세기동안 지구를 황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 지구의 다른 생물들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싶을 정도에요. 그러고 보니 바퀴벌레들은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서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영화 속 대사에서처럼 우리가 멸종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 배 위에 서 있을 것만 같았어요.


사실 <죠의 아파트>는 아무리 15년 전의 영화라고 해도 무척이나 어설프고 촌스러운 영화입니다. 주인공 죠는 뉴욕의 엣지잇는 시민이 아니라 아이오와에서 온 촌뜨기 청년으로 뉴욕에 발을 디디자마자 코베이는 신세가 됩니다. 이렇게 다소 덜 떨어지고 세상 물정 모르고 게다가 지저분한 인물로 설정하였죠. 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을 우스꽝스럽고 단순하게 설정한 것은 아마도 실제 주인공인 바퀴벌레들이 더 두드러지게 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킹공>에서 덩치가 큰 킹콩은 행동도 느릿하고 생각도 다소 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듯 이렇게 표현한 인간들을 바퀴벌레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다분히 킹콩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한 청년이 한 여자에 반해 결국에는 사랑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여운은 간단하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지저분한 것에 대한 거부감과 카타르시스라는 양면성 때문이 것 같습니다.


먼저 죠가 힘겹게 찾아들어간 그만의 보금자리 아파트는 오래전 처음 지어진 이래로 한 번도 월세를 올리지 않은 황금 알자배기 아파트입니다. 하지만 시설은 낡을 대로 낡아서 도저히 사람들이 살 것 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계단 곳곳에 쓰레기들이 굴러다니고 층계 올라가는 와중에 잠시 보이는 변기는 아무리 급해도 사용하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비명횡사한 아주머니의 촌스런 소품들이 어지럽게 걸려있고 거실과 주방은 설거지도 안한 냄비들이 어지러히 아무렇게나 널려 있고 속옷도 꼬질꼬질한 매무새로 널부러져 있었어요.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무척 더러운 상태입니다. 정말 더러움의 끝장을 보여주는 화면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역겨운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켠에서는 뭔가 흥미로움이 솟아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러움에 더러움을 더하며 살아가는 죠를 보는 것도 힘들긴 했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설정에서 어떤 각성같은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정리 정돈이라는 것은 고도의 정신작용이 뒷받침되면서 시간을 들여 육체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그 것이 지속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하죠. 그런데 극단적으로 더러운 상황에서 몸서리치게 부르르 떨게 되고 그 와중에도 청소를 절.대.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여기에 ‘나도 저렇게 한번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하는 묘한 대리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정말 <화성인 X파일>에 나옴직한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구요. (물론 제 방이 지금 그렇게 깨끗하고 정돈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막장으로 가고 나니 그 다음이 자연스럽게 궁금해 지더군요.


그래서 <죠의 아파트>는 정말이지 흩어지는 담배연기처럼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떠냐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하는 영화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무질서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자연은 질서가 흐트러지는 방향으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질서 있게 만드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는 다른 곳에서 가져와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다른 곳에서 에너지를 뺏고 그 에너지로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지요.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지저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바퀴벌레들은 그들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TV쇼도 준비되어 있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들의 킹콩친구의 구직활동을 도와주려고 신경을 쓰기도 하지요. 물론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죠가 사랑하게 된 릴리는 예쁜 화초를 가꾸며 험악하게 버려진 공터에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어 공원을 만들려고 합니다. 죠는 그만의 방법으로 그녀를 돕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들을 갈라놓은 것은 수 만 마리의 바퀴벌레입니다. 힘겹게 공터를 가꾸던 열정이 한순간에 시들어 버리고 모든 것을 그대로 될대로 되라는 듯 체념에 이르게 되어 버렸죠. 사실 이것은 바퀴벌레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터전을 잃었고 그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죠에 대한 준엄한 복수를 하려던 참이었으니 말이죠.


그렇지만 바퀴벌레들은 인간과 달랐습니다. 이들을 다시 붙여 놓은 것도 수만마리의 바퀴벌레랍니다.결코 그들은 인간과 같아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구를 배신하고 그를 슬프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더니 마치 초능력을 발휘하기라도 하듯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립니다.


결국 두 주인공은 사랑을 찾고 행복한 결말을 찾았지요.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에 안달복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안의 생각에 갇혀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할 때도 있고, 그것이 어떤 기쁨이 되는 때도 있음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이제 청소를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널부러진 삶에서 말그대로 ‘Let It Be'! 잇는 그대로 두어보는 여유와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보는 경험을 얻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바퀴벌레들은 정말로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는 아둔하고 가장 지저분한 지금 이순간만 지구에 번성하는 하나의 종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하기에는 멀었으면 하는 그들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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