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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과 이주노동자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

by feelosophy 201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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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발달한 문명을 전해주었던 중국에 고마움을 표하는 것으로 나쁜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대인배가 아닌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대주의는 그 원래 뜻보다는 마치 계급처럼 어른이나 형님으로 우러러 보고 무분별하게 모방하기 급급한 모습으로 비추지기도 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많은 산업발전을 이룬 서구나라들은 그들의 막강한 무력과 항해술 그리고 과학기술을 통해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하고 그들의 우월함을 심으려 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양식이 더 나은 것으로 비춰지고 그들을 따라하는 것이 발전하는 것이라 여기게 되기도 한거죠. 그렇지만 그들의 외모까지 동경하게 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높은 코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옅은 색의 머릿결을 모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산업발전이 늦은 동양인들의 과제처럼 되었어요.

 

그런데 이제 어느정도 먹고 살만하니까 이런 잘못된 따라쟁이 습성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늦은 나라를 깔보는 심보로 돌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두운 색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와 작은 체격조건 등. 이들은 현재 서양의 외국인들에 비해 한국에서 존중받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며칠 전 <시선>이라는 소설를 읽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많아진 동남아 처녀들과 한국 노총각들의 국제 결혼에 의해 낳고 길러진 혼혈아에 대한 조명이 마음을 꽝하고 울렸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어엿하게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곧 우리나라의 허리역할을 담당하는 청년이 될 것입니다.

 

 

 

물론 나라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다문화 가족을 위한 정책을 정부와 지역단체가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안산시의 경우 다문화 거리와 다문화 문화원을 운영하며 우리의 이웃으로 그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산의 경우 반월공업단지를 품고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신있는 정책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문화 가족의 비중이 더 높지만 경제적 자립도가 낮은 농촌 지역의 경우에는 이러한 정책을 펼칠 인프라나 인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게다가 어제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한국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로보게 하는 씁쓸한 사연이 올라왔습니다. 바로 토종 한국인인 사연의 주인공이 동남아국적의 외국인처럼 보이는 외모때문에 평소 많은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라 할지라도 무례하기만 할 그들을 향한 우리의 평상시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아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존대말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의 경우 한국말이 서툴다면 반말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만.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 인구가 증가하고 한국 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과 귀화한 새로운 외국인들은 예전처럼 한국어가 어색하거나 서툴지 않다는 인식을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끼리 이야기 나눌때 처럼 처음 보는 이들에게 존댓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요.

 

예전보다 외국인의 수가 증가했고 또 동남아 국적의 이주자들이나 혼혈2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과 우리는 같은 한국인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시선>에서처럼 열악한 환경에 처해서 가난을 되풀이하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슬픈 청년들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들이 우리 역사를 바로 보고 교육받을 기회를 가지고 그들의 외모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할거에요.

 

현재 방송되고 있는 다문화관련 프로그램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간대에 만들고 출연자들 중에도 그들 중의 한사람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직접 겪어보고 그들을 돕고자 했던 청년들이 직접 눈을 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생활을 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만약 우리의 외모가 딱 하루라도 그들의 그것과 같고 다소 어눌한 말투로 부당한 처후를 받으며 경제적 자본뿐만 아니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 혹은 그들과 무엇을 진취적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인 사회적, 문화적 자본까지 박탈당한다면 어떤 심정이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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