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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브랜드 리뷰/영화 리뷰

<철콘 근크리트>_그래도 희망은 있다.

by feelosophy 2011.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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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반에는 꼭 소위 ‘일진’이라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나마 연합고사를 치러야 들어갈 수 있었던 고등학교때에는 그런 아이들 수가 덜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더 대담한 행동을 일삼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담배도 피우고, 며칠씩 수업에도 안 들어오고, 피 멍 자국 가득 안고 교실로 들어서는 날도 있었습니다.


<철콘 근크리트>에도 과격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두 악동이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돈을 빼앗고, 때리고 욕을 해대죠. 죄의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다카라초’는 참 독특한모습을 한 동네입니다. 한 때, 번성하기도 했다는 그 동네는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문양과 조형물들로 어지럽게 채워져 있습니다. 눈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많은 색깔로 채워진 그림들과 허공을 응시하는 표정의 코끼리상, 시바상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죠. 사찰의 불화에서 봤을 법한 총천연색 조형물들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는 커녕 화려한 과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런 ‘다카라초’는 두 악동이 유일무이의 안식처로 생각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와서 설치는 꼴을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생각은 두 아이의 공통적인 생각은 아니었지만요. 쿠로와 시로는 흑과 백, 불과 물 혹은 결핍과 과잉이라는 상극이 만나 결국에 온전한 하나가 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들은 둘로 쪼개지고 서로의 빈 자리때문에 홍역을 거치게 됩니다. 완전하지 못함. 보살피고 보살펴지지 못함. 그것은 그들의 균형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언뜻 2NE1의 옷차림을 떠올리는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옷차림은 스타일리쉬하면서도 이상하게도 도시의 그 화려한 쓸쓸함과 조화를 이루어 냅니다. 마치 그들은 도시 그자체인 것처럼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옷과 소품들이 주렁주렁이지요. 시계를 팔뚝에까지 몇개를 차기도 하고, 특이한 형태의 모자를 뒤집어 쓰기도 합니다. 이런 독특한 취향을 드러내는 도시와 아이들은 <철콘 근크리트>만의 이미지를 완성시켜줍니다. 손에 땀이 차게 오금을 줘락펴락하는 음악도 이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겠군요.


물론
<철콘 근크리트>의 주인공은 이 두 아이뿐만이 아닙니다. 낙후한 도시의 개발에 손을 뻗은 어둠의 조직 일원으로서 도시를 지키려는 시로와 대결을 벌이는 기무라가 바로 또다른 주인공이지요. 기무라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이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비행청소년의 기행을 조장하는 시시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관계의 소중함 혹은 가족을 지키려는 시도를 통해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지요. 


기무라는 도시의 야쿠자 구세력 2인자쯤으로 혈기왕성합니다. 세상 무서울 것도 없다는 듯이 특유의 시큰둥한 표정으로 도시를 관리하지요. 시로 쿠로처럼 패션감각을 뽐내지는 않지만 기무라는 가장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표정 변화도 없이 사람을 해치는 냉정한 카리스마가 일단 시로에게 실컷 두들겨 맞으면서 웃음거리가 되어 버립니다. 이를 갈면서 새로운 세력의 손에 이끌릴 즈음 여자친구의 임신, 기꺼이 아빠가 되기로 마음 먹게 됩니다. 결국 이 결심때문에 아비같은 이전 보스를 신흥 야쿠자 사주로 죽이게 되지요. 물론 그 후 잘못을 바로잡아보고자 신흥 야쿠자 보스를 죽이기는 하지만, 예비신부와 미래의 아이는 끝내 보통의 현실이 될 수 없었습니다. 



도시를 지키려는 아이 시로와 그 도시와 함께 쓸쓸히 사라진 남자 기무라.



예전 일본에 잠시 관광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곳 생활을 오래하신 분이 우스개소리처럼 말씀하셨던 것 중 하나가 야쿠자와 관련된 이야기 였습니다. 야쿠자들의 권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내용이었죠. 한 예로 도시에서 영화를 찍으려면, 시와 경찰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지역 야쿠자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쯤의 이야기였던 것같아요. 그들이 나와서 교통상황까지 일사분란하게 정리한다는...


수명이 다한 성냥은 다시 어둠을 돌려놓습니다.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히지만 그 존재는 모든 세상을 다 밝히기에는 보잘것 없습니다. 

보잘것 없는 성냥불처럼 이들도 어쩌면 거대한 시대의 물결 속에 튀기는 물방울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한 때 활기로 가득했던 거리는 무법자들의 횡포로 썪어들어갑니다. 고름을 짜도 또 차오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을까봐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은 죽음을 이기고 결국에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실패했지만 기무라의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막 피어오른 사과 씨앗의 새싹처럼 다카라초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철콘 근크리트>가 새드엔딩은 아닙니다. 시로와 쿠로가 조화를 이루고, 고름을 짜내고 짜내어 더 깊은 상처가 된다한들 그 것을 치유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양심이

쿠로가 매일 매일 전화기에 대고 보고하듯, 지구별이 잘 지켜지게 하는 희망은 아닐까요.

그래서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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