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지같은 이야기 3편 : '백도사', '묘진전', '홍도'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시공간이 끝도 없을 것 같은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만큼은 눈의 초점에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강한 몰입을 만든다는 것이다. 웹툰 속 신화를 쓰는 웰메이드 판타지라고 길게 소개하고 싶은 3편이 바로 '백도사', '묘진전', '홍도'다.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시대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현대물에 비해 앞선 어느 시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캐릭터의 모습이나 배경 등의 이미지 구현일 테고 더불어 소품이나 말투나 관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이들 웹툰은 거스를수 없는 운명을 너른 세계 속에 새롭게 구성하는 한편 그 안에 꼼꼼한 일상들을 수 놓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세 편 모두 주인공의 이름을 본 따 만든 제목으로 되었는데 이들 세 명의 남자 캐릭터의 매력도 볼만한 포인트다. 처음에는 그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웹툰을 한데 묶기는 하였지만, 어떤 점에서 이들이 비슷한 지점의 흥미를 동하게 하는 것들인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다 보니 이들도 명확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맨위: '백도사' 늴릴/이끼(레진), 중간: '묘진전' 젤리빈(카카오), 맨아래: '홍도' S_owl(카카오)
전설 혹은 판타지
한국에 전해 내려오는 다양한 원형을 이들 웹툰 속 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도사’에서는 미신이 남아있을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개간되지 않은 깊은 숲속에 대한 두려움과 강한 판타지를 품은 시대를 이야기한다.
‘묘진전’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에게 익숙한 전설을 가져다 쓴다. ‘백도사’에서의 수인들과 맥을 함께하는 산신이나 선녀, 신령, 귀신 등의 민속 신앙의 숭배의 대상까지 등장하며 액운이나 역병을 옮기고 추위와 기근을 주는 재해까지도 신과 사람의 중간적 존재로 표현되는 것이 그렇다.
마지막으로 홍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개화기의 동서양 문물이 뒤섞여 어수선한 활기를 띌 때의 중국과 한국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강과 호수 그리고 산과 마을의 영적 존재들과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스토리 전개에서는 우리나라의 영웅 설화들과 많이 닮아있다고 볼 수 있다.
자연 그리고 민중을 이야기하다
웹툰 ‘백도사’는 수인과 도사간의 대결로부터 수인도사의 연합에서 요괴와의 더 큰 대결로 뻗어나간다. 초반 인간과 수인이 각자의 공간에서 평화롭게 살던 시기를 지나 인간들의 욕심은 결국 평화를 깨는 것으로 긴박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인간은 도사들을 시켜 수인의 공간을 침범하고 혼란을 만들어 내는데, 이 때 산수를 지키는 다양한 수인들, 수인들에게 희생되는 민중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그려진다. 강력한 도술을 가진 백도사가 이들 사이에서 혼란을 막아서려는 역할을 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편 ‘묘진전’은 천계에서 쫓겨나 인간세상으로 온 묘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역병이나 자연재해에 한없이 약한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계급차이, 남녀차별에 대한 그 시대를 향한 모난 분노에 의한 저주, 도술 그리고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구슬픈 연가다.
‘홍도’는 특출한 주술사가 문득 모험을 떠나면서 만나게 되는 모험 이야기인데, 자연 속 영물들과 교신하며 이런저런 사건을 파헤치며 목표로 다가간다. 원인 모를 살인사건이 일어나거나 오묘한 공간에 갇힌 채 요물을 만나 대결을 펼치면서 각 마을의 주민들의 어려움을 풀어주며 여행을 계속해 나가는 식이다.
신묘한 능력을 나타내는 제거된 눈 혹은 타고난 눈
백도사, 묘진, 홍도 세 주인공의 성격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나이순대로 나열을 하였지만 이 그대로 평면적인 주인공으로부터 입체적 주인공으로 나열된 것이기도 하다. 물론 팡팡 튀는 홍도의 매력보다 극심한 이기주의에서 개인주의를 넘어 다른 이들을 배려하게 되는 묘진의 행보가 더욱 입체적이라 보일 수는 있겠다.
특출한 도술 외에도 이 캐릭터들은 공통점이 하나있다. 바로 한 쪽 눈이 범상치 않다는 것이다. 백도사는 딸을 구하기 위해 오른쪽 눈을 스스로 멀게 하였고 묘진은 왼쪽 눈을 도난당했으며 홍도는 완쪽 눈이 황금색을 띤 채로 범상치 않은 출생을 경험하였다.
백도사, 묘진, 홍도의 눈
가장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을 한 백도사의 경우처럼 자신의 딸을 위한 희생쯤은 아무 갈등조차 필요 없는 것이었지만, 묘진의 경우 아닌 밤 중 홍두깨처럼 두 눈 없이 태어난 산이의 어미가 묘진의 눈을 훔쳐 달아나는 탓에 외눈박이가 되었다. 묘진은 천계로 올라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 인간 세상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인물이고 자신이 인간계로 내려온 이유조차, 아니 그 전에 연심을 품었던 선녀로부터 멀어진 이유조차 모르고 있던 답답한 닫힌 인물이었다. 천방지축에 아직 혈기 왕성한 십대 홍도는 백도사의 진중함이라든지 묘진의 냉소적인 유유자적하고는 거리가 멀며 특이한 금빛 눈도 백도사나 묘진처럼 갑자기 들어 닥친 사건에 의해 제거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었다. 그래서 앞 선 두 주인공에게 가지는 애틋함보다는 신적 존재로서의 꽤 그럴싸한 두드러짐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렇다고 앞 선 두 주인공의 제거된 눈의 의미가 같은 것은 아니다. 백도사의 제거된 눈은 두 눈을 통해 양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 도사지만 도사들과 맞서 싸우게 된 계기를 만들어 낸 것이고, 묘진의 제거된 눈은 다시 두 눈이 없던 산이로 옮겨갔기에 인간 세계와의 인연을 만들어 내는 씨앗이 되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홍도의 금빛 눈은 세상을 밝히는, 달리보고 새롭게 이해하려는 노력의 표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이들이 가진 부재 혹은 특출한 눈의 존재는 웹툰의 주인공으로서 모험, 능력, 판타지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시각적 장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 몰입의 ‘백도사’, 스타일의 ‘묘진전’ 그리고 소재와 아이템의 ‘홍도’
앞서 이야기한 몇몇 지점들의 공통점이면서 차이를 나타낸 것들에 덧붙여 본다면 우리 독자가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백도사’는 무협장르의 공식을 제법 많이 담아내며 강한 적과의 대결과정에서 흥미를 끌어내는 스토리가 몰입의 큰 지점이 된다면, ‘묘진전’은 한 많은 막만과 함께하던 여정이 끝이 난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의 여운이 남았다. 한편, 일전에 ‘원피스’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모험의 구조 안에 새롭게 만나는 공간, 대상, 소재 등을 세밀한 표현력으로 담아내어 보는 즐거움을 배가 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홍도’다.
백도사의 도술, 묘진의 한국적 스타일, 홍도의 섬세한 소재
묘진전의 경우 연재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긴 여운 탓에 천계와 인간계의 상하 공간, 막만과의 여정에 의한 수평 공간의 교차가 무척이나 크게 느껴진다. 백도사와 홍도의 모험과 대결이 아직도 한창이라 되찾을 평화와 운명의 대상을 만나는 것을 응원하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는 고민일 테지만 세 캐릭터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 혹은 어떤 이의 매력이 가장 치명적인가 하는 고민은 혼자하기로 하겠다.
문화기획자의 feelosophy
문화기획, 전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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