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울이라도 지역에 따라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홍대와 강남도 자유로움과 도외적인 느낌으로 그 개성을 가를 수 있고, 대학로와 종로는 한 두 블럭 차이로도 그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그런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젊은 이들이 많은 곳이 익숙합니다. 그 복잡한 거리를 걷다 카페에 들러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고 큰 서점에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어보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같은 서울에서 찾은 또 다른 공간은 아주 낯선 공간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게 합니다. 바로 재래시장을 다녀왔거든요. 평균 연령이 40대 이상인 곳. 그렇지만 그 활기는 강남이나 홍대앞보다 따뜻한 곳이었습니다.
촌스러운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참 소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트보다는 시장을 좋아하고 꽤 먼 거리라도 시장을 찾아 가는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는 거추장스럽게 미니수레를 끌고 옷도 투박하게 입고 나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날씨가 추우니까 마스크도 하고 장갑도 껴야 하는데, 그리고 많은 짐을 가지고 먼길을 오르는 게 걱정스럽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시장에 가지 말고 같이 마트에 가자고 말리다가 이번에는 엄마를 따라 나섰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소위 잇!플레이스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물론 딸로서 짐도 들어드리고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500명? 혹은 1000명
시장을 가기 위한 필수품 미니수레들!
혼자 이리저리 재래시장을 찾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정말 물건을 사려고 일부러 시장을 찾기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관광목적의 재래시장과 상업공간의 재래시장은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이날은 시장이 관광명소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공간으로 찾았기 때문이겠죠. 상인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인과 흥정을 해야 하는 것이고, 물건을 골라야 하니까 시장을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길게 늘어선 시장 길을 따라 약, 야채, 옷, 생선들을 다루는 가게들이 나름의 질서대로 모여있습니다. 마치 큰 마트의 생선코너, 야채코너 이렇게 해 놓는 것처럼요.(쓰고 보니 웃깁니다. 시장을 따라 마트가 만들어 졌을텐데말이죠. 이건 마치 몸매 좋은 사람에게 마네킹 같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겠죠.)
우리 엄마는 이것저것 물건을 고릅니다. 아빠가 좋아하는 생선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TV에서 보았던 매생이를 찾아 봅니다. 이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면서 당당한 모습의 엄마를 본 적이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아요. 아마도 엄마와 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서 편안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사람들이 많아서 엄마와 떨어지기도 했는데 덕분에 보호자의 마음가짐으로 동행했던 딸을 엄마는 잘도 찾아내셨죠.
구수하고 넉넉한 빨주노초파남보
왜 생선만 찍느냐며 찍어달라고 하시길래 찍었더니 ...
애누리가 넉넉한 공간이라 마음이 신이 납니다. 주먹만한 감자 대여섯 개를 3000원에 팔고 고구마를 함께 샀더나 고구마를 하나 더 넣어주십니다. 3마리에 5000원인 동태를 예쁘다고 작은 생선을 하나 더 끼워주십니다. 원래 4000원인 매생이를 3000원에 팔고 고마워서 생굴을 삽니다. 엄마는 딸들이 좋아하는 생닭을 두 마리 만원에 삽니다. 결국에는 두 개에 천원인 무를 찾아서 사들고 귤이랑 바나나도 세트로 사니 500원을 깎아줍니다.
물건을 사면서 흥정을 해보기도 하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깎아줍니다. 추운 날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피 리어카를 피해서 이리저리 바쁘게도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찾습니다.
한 시간 남짓 시장을 돌다 보니 저는 물건을 다루는 상인들의 살아있는 손놀림에 기운이 버뜩 들었답니다. 아마도 우리엄마는 한 시간도 더 지하철을 타고 가서 힘겹게 장을 보는 것은 일종의 에너지 충전을 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재래시장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 건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500명의 엄마들 때문인 것같습니다. 사뭇, 젊은이들이 가득한 강남이 그 속에서 충분히 익명이 되고 외로울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가끔씩 엄마와 재래시장 데이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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