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미생>이라는 말을 붙여 가며 윤태호 작가님을 이야기 하는 것이 이제는 정말 거추장스러울만큼 윤태호 작가님은 정말 유명한 만화가입니다. 그리고 박기수 교수님은 우리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스토리텔링 학자입니다. 올 봄 부터 저는 이 두 분의 대담 형식의 토크 콘서트를 열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페이스북을 통해 윤태호 작가님과 박기수 교수님께 어려운 시간을 내어주시기로 약속하셔서 어찌나 꿈만 같았는 지 모릅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이렇게 실제로 두 분이 진지하고 또 유쾌하게 말씀을 나누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아직도 꿈만 같네요.
비로소가 10월 기획으로 준비한 <만화를 만나다>에서 이렇게 두 전문가를 모시고 <만화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토크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관객으로 모신 분들이 서른 명 정도 되는 작은 행사임에도 두 분은 진지하고 열정적인 토크를 통해 함께 자리한 관객여러분에게 큰 보람을 드린 것 같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가 있기에 앞서 유쾌한 리듬과 매력적인 음색으로 흥을 돋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밴드 레드로우의 공연이었는데요. 경쾌한 리듬과 구성진 목소리로 1집의 자작곡에서부터 Let it be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연주하며 뻣뻣한 관객의 어깨를 한껏 들썩이도록 했답니다. 처음에는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자리를 채워주신 관객들의 모습에 레드로우는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오늘은 좀 덜 까부는(?) 상황이 연출되었다고'는 했지만 이내 관객들은 두 손을 들어 소리지르고 호흡하고 박수를 쳐가면서 금요일의 밤다운 시간을 만들어냈어요.
레드로우의 공연이 끝나고 두 분의 이야기가 있기에 앞서 박기수 교수님의 웹툰 미니 강연이 있었습니다.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웹툰을 바라보는 학자로서의 신선한 시각, 네이버와 다음의 웹툰 정책에 대한 현실이나 웹툰 작가 그리고 웹툰을 대하는 독자들에 관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죠. 아무래도 웹툰을 주제로 모인 관중이다 보니 교수님의 강연에 깊숙히 주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유의 찰진 위트 섞인 말씀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종종 연출되기도 했답니다. 저는 교수님 강연에서 영화보다 작은 시장이라고 할 수 없는 만화산업에서 이를 진지하게 다루는 만화평론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게 교수님은 우리 삶을 드러내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만화를 다루는 분위기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끝으로 강연을 마치셨답니다. 언제나 반듯하고 논리적이고 열정적인 교수님의 강의는 단 30분이었지만, 하나하나의 말씀들에 선 굵은 밑줄을 주욱 그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주인공인 류해국이나 장그래의 외모와는 달리 친근한 모습을 한 윤태호작가님이 자리를 앞으로 옮겨 앉으셨죠. 세종대에서 강의를 하고있는 윤태호 작가님은 박기수 교수님의 강연동안 관객 분들과 함께 강연의 내용에 긍정 혹은 당신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조용히 붙여주시기도 했죠. 역시 소규모 모임에서 대단위 강연까지 경험이 많은 두 분이기에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박기수 교수님은 교수님의 앞 선 강의와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작품의 안팍에 관한 화두를 균형있게 꺼내며 대화를 이어나가셨습니다. 그 중에는 <이끼>와 <미생>의 연재 스타일에 대한 것과 주인공의 입체성과 스토리와 작가님과의 거리에 관한 이야기, <내부자들>의 내용과 현재 상황에 대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윤태호 작가님은 긴장감을 만들어 독자들이 이야기의 끝까지 숨차게 달려가게 만들었던 <이끼>와는 달리 비록 당신이 경험한 바는 아니지만, 스스로가 하고 싶었던 생활 밀착적인 이야기를 잔잔하게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사실 <미생>은 박기수 교수님이 말씀한 것 처럼 <이끼>만큼의 파급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조용하고 또 은근하게 공감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전체의 완결보다 매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울림이 연속적으로 독자들이 끈끈하게 반응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은근한 뚝배기 같이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테구요. 이전 작품들은 힘겨워하시던 작가님의 아내분도 <미생>을 즐겁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의견의 또 다른 증거인 셈이겠죠.
많은 웹툰 작가와 지망생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또 그만큼 하고 싶어하는 윤태호 작가님의 스토리구성 및 연출능력에 대한 말씀에서는 자못 비장함마저 느껴졌습니다. 허영만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어려움과 스스로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에 대해 이야기 했었죠. 노숙생활도 마다 않던 시절, 명작을 따라 써보며 이야기를 몸으로 익히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다른 사람들의 검증의 검증을 거치기도 하는 등의 치밀한 준비와 진득한 노력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님 스스로도 ‘스토리’와 그 ‘텔링’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잘 하기 위해 무척이나 고민하고 노력하였다는 것은 작가님의 작품이 그저 천재성이나 우연함으로 만들어진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물론 이와 같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비교적 어릴 적부터 평균 이상으로 잘 하는 것이라곤 ‘그리는 것’밖에 없던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익숙함이 있었고 그래서 그 그림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이야기라는 본질에 힘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이죠. 만화라는 것은 어찌되었던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공백으로 소통하는 장르니까요.
윤태호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바로 <슬램덩크>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할 때의 눈빛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았는데요.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방금 새로 갓 나온 <슬램덩크>를 대하는 어린 남학생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답니다. 한 에피소드를 예로 들면서 <슬램덩크>의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만화를 수많은 레이어를 합쳐서 그리는 작가라는 말을 했습니다.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만들 때, 여러 장의 레이어를 겹쳐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 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다양한 감정과 철학과 분위기를 다양한 레이어로 압축해 놓은 만화라서 그 만화를 따라가기에는 너무도 역부족하다는 말을 붙이셨죠.
그래서 만화는 우리의 삶을 층층이 간직한 하나의 기록물이자 그를 가장 잘 드러내는 창작물이기도 합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미생>이 연재됩니다. 한 주에 두 번의 마감이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나 그를 돕는 분들에게는 살인적인 스케줄이 되지만, 웹을 통해 소통하는 간격으로 한 주에 두 번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작품을 만들어 낼 때는 이를 단행본이나 다른 형태(mp4묶음이나 전자책 혹은 앱툰)으로 바뀔 것을 염두하기도 한다는 말씀도 있었죠. 역시 전문가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대목이 아닌가요? 하나의 작품을 올곧이 만들어 내기도 바쁜 중에 그 다음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의 모습을 조정한다는 것은 바둑에서도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고수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정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 끝난 토크 콘서트 후에도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사인을 위한 펜을 항상 지니고 다니십니다.) 기념 촬영을 하고, 웹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분들과의 짧은 대화와 웹툰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과의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충실히 귀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밤샘 작업 후, 대학 강의 그리고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토크 콘서트에 피곤한 내색 한번 안하시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가님의 초인적인 자세는 아마 작가님의 단단하고 존경스러운 인품을 드러낸다고 할 것입니다.
작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죠.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지만 막상 그 용기를 내기가 힘들다. 어쩌면 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잘하는 사람들은 그림만을 그려왔던 당신과는 다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오히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가 잘 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으므로 그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스스로 시작시키기 위한 자신만의 발전소를 가동시켜라!'라고.
밤 늦게까지 이어진 뒤풀이 술자리에서도 조근 조근 당신의 작가로서의 철학을 이야기 했습니다. 박기수 교수님과 팬 분들 몇몇과 함께 오붓하게 이러한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를 울고 웃기는 <미생>을 잘 만들어 주시길~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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