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습지생태보고서, 예민한 청년의 감수성
<습지>는 녹용이의 큐티함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지만, 욕망 앞에 선 가치의 초라함에 대한 이야기지요. 그 초라함때문에 너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2판2쇄의 새롭게 쓴 작가의 말 中
우연히 어제 저녁, 최규석의 네이버 웹툰<송곳>을 읽고 아침 일찍 나왔습니다. 우연히 <습지 생태 보고서> 단행본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이름을 익힌 직후라 그런 것인지, 그의 만화체가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아니면 그의 스토리 스타일이 내스타일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우연의 겹침은 또 하나의 평범하게 보이지 않은 작가를 더 알게 해주었고 점점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20대야 잘 모르겠지만, 그 시절을 지나봐야 초딩 위에 고딩있고 고딩위에 20대가 있었다는 그 철없고 허세만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게 될겁니다. 물론 그시절의 패기와 앞뒤 안재고 열정을 쏟는 무식함이 그리울 때도 있을테지만요.
최규석의 <송곳>이나 변호사를 주제로 삼았던 웹툰이나 그리고 예전의 이 <습지생태보고서>에는 세상에 대고 말을 거는 작가 특유의 냉소나 읖조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시기적으로 직접적인지 간접적인지의 정도의 차이이지 그 적극성은 현실을 부정하던 낭만파와는 적대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계몽적이거나 선동적인 그런 류의 만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그림이 세련되었고 서로 다른 장르적 특성을 가진 만화를 뒤섞어 보는 재미도 충분하거니와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남다른 개성이 자꾸 애정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최규석 작가는 리타가 무턱대고 이상형으로 삼았던 77년생입니다. 더 중요한 요건이었던 문과 오빠는 아니지만 예술성 넘치게 만화창작과를 졸업하였습니다. 소개 글에는 '웃기면서도 슬프고, 통괘하면서도 가슴 아린 청춘의 초상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라고 나와있네요. KBS에서 드라마스페셜로 드라마화 되기도 하였습니다.(http://www.kbs.co.kr/drama/thedrama/vod/db/index.html?idx=55)
아닌척, 2쇄 발간을 앞두고 써 둔 그의 '작가의 말'에도 이러한 개성의 활용이 못내 아쉬운 티가 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반복이 주는 미덕'에 대한 오해에서 이 살아있는 캐릭터들을 되살려내지 않았던 것이죠. 7년 전과는 확실히 최근은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굳이 다른 장르로 전환이 되어 거대 자본에 의한 스포트라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웹툰의 소비와 그 속의 스토리의 활용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 살아있는 캐릭터들을 계속해서 살아지도록 만들어서 '원피스'의 루피선장과 쵸파처럼 최군과 녹용이가 끝없는 항해를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훗날에야 반복이 주는 미덕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굴리면서 변주하는 것은 창작자와 감상자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고, 오랜 연재 기간은 캐릭터에 대한 독자들의 친밀도를 높혀 캐릭터의 활동 영역을 확장시켜 주더라고요. 왜 그 땐 동어 반복을 사기라고 여겼었는지......
2판2쇄의 새롭게 쓴 작가의 말 中
이렇게 보면 극화같기도 한.
짤막한 단막극처럼 몇컷 되지 않은 에피소드는 굵고 짧게, 대신 여운은 길게. 라는 모토를 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대기 바쁜 청춘들이 연애조차도 사치라 여겨지는 처지를 궁서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녹용이는 드라마에서는 멀쩡한 사람캐릭터로 나왔지만 사실은 능글맞은 사슴입니다. 자기 녹용이나 피를 팔아 생계를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아주 불쌍하기도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빌붙어 양심없는 행동을 일삼아 얄밉기도 한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작가가 밝히듯, 상명대 상징동물이 사슴이어서 시작되었던 캐릭터작업이고 스토리가 맥이 없어서 땜빵격으로 넣었던 것이 나중에는 중심 캐릭터로 자리잡았더라는 매력넘치는 캐릭터입니다. 저런 당당함이나 능글맞음이 없다면 궁상스러운 일상이 얼마나 지겹게 느껴졌을까요.
궁상맞은 반지하 자취방의 실체입니다. 비좁은 곳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 사람들은 조석의 '마음의 소리'처럼 웃지못할 황당한 스토리를 만들면서도 자못 진지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왠지 남같지가 앖습니다.
중간중간 드러나는 사물을 의인화하는 장면이나 각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지점, 중간중간 심리를 드러내는 쌩뚱맞은 그림체에서 최규석 작가의 그림실력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순정만화, 극화, 코믹만화 가끔은 3D나 그림책에 들어갈 삼화스타일까지 다양한 그림체를 적절하게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습지생태보고서'의 매력중에 하나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마침내 이들은 궁상스런 반지하 자취방을 떠납니다. 어두침침하고 좁은 자취방과 대비되는 너른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은 기존 '안빈낙도' 에피소드를 복선삼아 더욱 행복해 보입니다. 원하는 것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기에, 청춘들이 세상에 불만이나 적의를 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하루 삼시세끼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문화기획자 리타의 feelosophy
문화기획, 전시기획, 문화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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