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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기획

마음을 전하는 프리허그와 캥거루 케어

by feelosophy 201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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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 <캥거루 케어>라는 단어를 난생 처음 접했습니다.

캥거루 케어란?
아기의 맨살과 엄마의 맨살을 최대한 많이 최대한 오래 밀착시켜 아기의 정서 안정과 발달을 돕는 케어 방법. 1983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인큐베이터의 부족을 대신할 방법으로 시행한 이른둥이 케어법이지만, 현재는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신생아 케어 방식이다. 새끼를 일찍 낳아 주머니에서 따뜻하게 키우는 캥거루의 케어법과 비슷하다 하여 캥거루 케어라 불리게 되었다.
(원글보기)


태아는 엄마 몸속에서 9개월여를 자라고 마침내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데, 가끔은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몇 달 먼저 세상에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3.7kg인가 하는 아주 튼실한 무게를 자랑하며 세상에 나왔지만, 그 성급한 녀석들은 1kg도 채 되지 않은 아주 애처로울만큼 작은 모습으로 겨우 숨을 쉬는 정도였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이 번이 두 번째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 마저도 거의 마지막부분에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잔상은 오래토록 남았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아빠가 여린 아기를 맨 가슴에 올리고 가만히 쌍둥이 두 아기가 안겨 잠드는 모습을 지켜 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아이들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기들은 그 자그마한 두 손을 오므려 아빠의 가슴에 얹고 편안하게 기대어 누워 있었습니다. 아빠의 심장 소리와 아빠의 음성을 몸으로 전해들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나중에 그 쌍둥이 엄마 아빠는 서로 안겠다고 싸우다가 결국은 한 아이씩 안고 누웠더군요. 보는 내내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광경이 아주 낯설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저도 비슷한 편안한 포옹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는 여린 아기가 아닌 다 큰 어른이지만 그래서 아무렇지 않고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 마음을 다스리지 않지 않았나도 싶습니다. 어찌보면, 이는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구요.

일이든, 사랑이든 혹은 그 외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다양한 좌절에 우리는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얻습니다. 따뜻한 눈길이나, 응원의 음성 그리고 토닥토닥 등 두드리며 꼭 껴안아 주는 포옹에서 말이죠.



저는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힘들지 말거라'하는 포옹을 받고 등 두드리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잘할거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많은 위안이 되었고, 힘이 되었습니다. 심장의 울림과 적당히 따뜻한 체온이 맞닿아 공진할 때, 무언가 알 수 없는 큰 에너지가 솟아 나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모른 척 했던 마음 속의 앙금을 가라앉히고 가볍게 솔직하게 편안하게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와서 또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비록 가슴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기대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콩콩거리는 심장 박동과 따뜻한 체온으로 감싸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힘을 얻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구요.
 

 

프리허그
본래적 의미는 포옹을 통해 파편화된 현대인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프리허그닷컴(free-hugs.com)의 설립자인 제이슨 헌터(Jason G. Hunter)가 평소 "그들이 중요한 사람이란 걸 모든 사람이 알게 하자." 는 가르침을 주던 어머니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2001년에 최초로 시작하였으며, 이후 "Free Hug"라는 로고를 새긴 옷을 제작, 판매하기도 하였다.(위키백과)


사실 저는 프리허그(free hug)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명동 한 복판에서 '프리허그' 팻말을 들고 서있는 젊은이들을 달가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사람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치기어린 행동하는 사람 쯤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들에 의해 힘을 얻고 용기를 받았을 사람들은 꼭 그만큼의 행복을 주변에 나눠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연하게 보게 된 다큐 한편을 통해 그리고 자애로운 포옹을 통해, '인간人間'이라는 말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라는 동물의 사회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결국 내가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고 시련에 빠져있다 해도 같은 사람이 두 팔 벌려 꼭 껴앉아 준다면, 죽어가던 여린 생명도 살려낼 만큼의 큰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큰 의미를 이미 담고 있었습니다.

저도 얼른 엄마 아빠, 선생님과 같은 큰 어른이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두 팔 벌려 따뜻한 체온을 나누고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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