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엮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영화는 흡사 <백투더퓨처>와 <찰리와 초콜릿공장>을 섞어놓은 듯합니다. <백투더퓨처>가 구닥다리 자동차를 타고 시간을 접으며 오가는 이야기라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하이커)는 이보다 스케일이 훨씬 확장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 우주 전체로 확장되고 시간도 그 만큼 <백투더퓨처>에 비해 어마어마한 간극을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하거든요.
또한 <찰리와 초콜릿공장>에서 각종 현란한 소품들을 가지고 애니메이션 혹은 컬트무비적 요소를 만들어 내었다면 <히치하이커>에서도 상관없을 것 같은 소품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거나 우주인들이 등장하여 수많은 괴상한 캐릭터들을 분출해 놓았답니다. 배경이 되는 우주선의 특성에 따라 그 안에 존재하는 생물들의 외모에서부터 그들이 사용하는 소품들이 오랜시절 게릴라들이 굴 속에서 쓰던 것과 비슷하다거나 <오스틴파워>에서 본 듯한 팬시한 첩보장치가 즐비한 깜찍한 우주선이 각종 형태로 변이될 때, 그 안의 캐릭터들도 그와 동일한 모습으로 변신을 하는 것도 볼만 합니다. 특히 네모난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보았을때의 기분이란...
이렇게 산만한 듯한 영화지만 이상하게 계속해서 집중하게 합니다. 아마도 이리저리 튕겨 그 방향이 모호함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그 패턴을 알 수 있을거라는 묘한 도전의식이 생기기 때문인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첫번째로 비슷한 장면의 중복을 들 수 있습니다. 평온한 아침을 맞은 남자 주인공이 고속도로 우회로를 만들기 위해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집을 잃게 되었다는 설정과 우주의 4차원 도로를 만들기 위해 지구를 파괴해야 한다는 설정이 중복되어 나타납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고 누구를 위한 대의인지 모를 정책에 의해 소중한 공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또한 이야기의 중심 흐름이기도 한 거대 컴퓨터를 향한 질문과 해답에 대한 부분인데요. 720만년을 기다리며 반복되고 나중에는 주인공들이 다시 한번 찾아 절대컴퓨터와 문답하게 되는 곳입니다. 이는 마치 동양에서의 선문답과도 같은 어떤 통찰을 요구하는 듯하여 골똘히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홍차를 마시는 주인공의 모습이 처음-중간-끝에 등장하게 되는데, 각각의 홍차는 또다른 의미를 드러내보입니다. 일상-통찰-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나 해요.
그리고 두번 째로 <히치하이커>에는 제가 좋아하는 은근한 풍자와 냉소가 담겨있다는 점입니다. 국가 정책에 의해 힘 없는 대상은 착취 당하고 파괴당해야 한다는 것과 (주인공의 국적인)영국인이라면 줄을 서는 것쯤은 전문이라는 것 그리고 대통령은 지도자라기보다는 대중의 이목을 끌어 정책을 날치기 통과하기 이롭기 위한 것이라는 등의 대사는 자못 의미심장합니다. 또한 시종일관 우울증에 걸린 로봇의 모습은 무기력한 지식인 쯤이 투영되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관점을 꿰뚫도록 만들어진 총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총을 맞은 사람은 상대방이 납득할만한 통찰을 드러내며 말을 하게 되지요. 레몬즙을 갈아 넣어 뇌를 활성화 시키는 신기한 모자도 등장하는 데 이 모든 것이 두뇌를 두개로 쪼개야만 했던 우주대통령에게 사용되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대통령과 앙숙관계인 제6행성의 지도자는 거대 종교의 수장으로서 코를 풀고 재채기 하는 것 등의 행위를 보여주면서 희화화되기도 합니다.
이 럭비공같은 영화의 패턴을 찾기 위한 세번째 요소라면, 다층적 대결구도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무턱대고 마다가스카르로 떠나자던 다윈코스프레의 한 여자를 잊지 못하는 남자와 그 여자를 꼬신(?) 우주 대통령의 신경전도 그렇고, 우주 대통령 선거 당시의 상대방 후보였던 6행성의 지도자와의 다소 소름끼치는 장면이 들어간 대결이 있습니다. 좀 더 크게는 지구를 해체하는 보곤인들과 그들을 피해다니는 주인공 무리의 대결도 있으며,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만들어 내는(큰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생쥐와 주인공무리의 대결도 있습니다. 작게는 애정관계에서 크게는 사회관계와 인생 혹은 그 의미에 대한 갈등이 주인공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인간은 지구에서 생쥐, 돌고래 다음으로 지능이 높으며, 보곤인의 시는 우주에서 세 번째로 형편없으며, 720만년이 지나 궁극의 대답을 얻기 위한 노력과 5차원 ucc를 촬영해야 한다는 등의 설정에서 수많은 숫자들이 난립하게 됩니다. 영화의 첫 부분부터 등장했던 '히치하이커'책 속에서도 요즘 한창인 인포그라픽적인 영상기법을 취하면서(개인적으로 전자책의 한 형태라고 관심있게 보기도 했어요. 책이 하나의 태블릿피시쯤으로 보이던걸요. 음성지원, 검색, 그래픽과 영상 및 번역 등 안되는 게 없습니다.) 쓸데 없는 방대한 정보를 자랑하기도 하지요. 결국, 궁극의 대답 42는 6곱하기 7이라는 대답이 전부일 뿐이고 코앞의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고 죽게 되는 바보같음을 때늦게 알게 되었다는 것 쯤이 전부인데 말입니다.
인간은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는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에 불과하고 그 속의 우리는 하나의 부속품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지구라는 인공적인 곳에서 뿌리내리고 힘차게 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복구가 가능하다. 특히 피오르드를 만들때는 아찔할만큼 좋아하는 부분이고.
결국, 신나게 돌아왔지만 <히치하이커>는 이렇게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물건들이 새롭게 보이고 타월하나가 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보호막이 될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망설이지 말것이며 돌고래와 생쥐를 멸시하지 말지어다!
산만함 속에 패턴과 의미를 찾으려는 저의 끼워맞추기식의 감상이 아니어도 소소한 재미에서부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요소요소때문에 아마 아이들에게도 유쾌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해요. SF소설로, 게임으로 TV시리즈로도 수십년동안 계속된 이야기라는 것을 보아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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