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교양인이 되기 위해 공부하다가 구조주의를 들여다보는 중에 만난 책입니다. 표지에 적힌 푸코니 바르트니 라캉이니 하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찔한 것이 흡사 고등학교 시절 물리과목에 나오던 과학자를 대할 때의 그 것입니다.
우치다 타츠루는 입문서로서 구조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힙니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마치 소설을 읽듯, 한사람한사람의 구조주의학자들의 생각을 이해하게 됩니다. 구조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서 의미체계를 찾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각 시점의 몇몇 학자들이 내놓은 여러 연구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을 좀 더 잘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읽게 되었어요.
문화이론을 중심으로 한 구조주의 책을 보다가 이 책을 만나고 보니 구조주의라는 좀 더 포괄적이면서 간략한 내용을 만나게 되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은 총 6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구조주의 이전의 역사부터 소쉬르, 지금 여기의 푸코, 바르트와 레비스트로스 그리고 라캉의 순서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표현이 맞는 것이 중간중간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을 지은이의 소박한 예시를 통하면 말랑말랑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각 장 별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살펴 몇몇 소감을 붙여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장. 구조주의 이전의 역사
처음부터 우리는 '편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리타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포스트구조주의 시대라고하지만 오히려 '구조주의를 상식으로 간주하는 관습의 시대'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구조주의의 특유의 용어로서 시스템, 차이, 기호, 효과 등의 개념이 지겨워지게 된다면 구조주의가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종말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구조주의를 설명하는 중에도 구조주의 특유의 개념이나 단어를 사용하는 것 또한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마치 선생님이 개념을 가르치고 그 예시를 반복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구조주의의 불길이 태동하기 시작할 때 기름을 쏟은 것이 바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입니다. 이들은 각각 '보편적인 인간성이라는 것은 없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의 사회관계에서 '현재 상태의 긍정', 즉 '존재하는 것, 행동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만 기능할 뿐이다'라고 하거나 '우리는 자기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거나 이를 기초로 자유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하고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에 니체는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외적 규범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열정적으로 외친 점을 들어 구조주의의 촉매 역할을 한 나머지 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니체는 "우리의 선악은 과연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을까? (중략) 인간은 어떤 조건을 토대로 선악이라는 가치 판단을 생각해낸 것일까? 그리고 그 들 가치판단 그 자체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들의 가치판단은 이제까지 인간의 진전을 저해해왔는가 아니면 촉진시켜왔는가?"라며 인간의 선악의 관념을 의심합니다.
2장 창시자 소쉬르의 등장
저자는 소쉬르의 언어학이 구조주의에 안겨준 가장 중요한 견해를 하나만 든다면 "언어는 '사물의 이름'이 아니다"라는 것이랍니다. 이는 앞서 리타가 장황하게 적어놓은 소쉬르의 구조주의에서 다른 설명을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http://ritachang.tistory.com/605)
이어 가치의 설명에는 말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의 두께와 깊이를 이야기합니다. '가치' 즉 의미의 폭은 그 언어 시스템 속에서 어떤 말과 인접한 다른 말과의 차이에 의해 규정된다는 개념이 이어지지요.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요. 경험은 언어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번역할 수없는 미묘한 느낌의 차이를 가진 단어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풀어 설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저 외래어로 표현하는 것이 그때문이죠. 이러한 언어에서의 차이는 각 문화마다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기때문이고 그 체계는 각 문화마다 가진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3장 푸코와 계보학적 사고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지금, 여기,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진화해온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로부터 '지금'을 향해 곧바로 흘러왔고, 세계의 중심은 '여기'이며, 세계를 살고 경험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결정하는 최종적인 재판부는 다름아닌 '나'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 여기, 나'를 역사의 진화에서 최고 도달점, 필연적인 귀착점으로 간주하는 생각을 푸코는 '인간주의'라고 부릅니다....
푸코는 이 인간주의적인 진보사관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역사의 직선적 추이'라는 것은 환상입니다. 현실의 일부만을 떼어내고 그 이외의 가능성에서는 조직적으로 눈을 돌려야 이른바 역사를 꿰뚫는 '선'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입니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버지 성을 따르는 관습을 예로 듭니다. 순수한 혈통을 이야기 하면서 어머니와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성은 제외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 것이죠. 위의 현실의 일부만을 떼어내고 그외의 가능성에서 눈을 돌린다는 표현이 이해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동등하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한쪽만의 혈통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다소 큰 가지치기입니다.
또한 광기에 대해서도 세계가 표준적인 인간만이 사는 장소가 되었고 거기에서 벗어난 사람에 대해 조직적으로 배제한다는 푸코의 주장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광인은 사법관에 의한 수감의 대상이 아니라 의사에 의한 치료의 대상이 됩니다. 얼핏 광인의 처우 방법이 보다 합리적이고 인도적으로 바뀌었다고 새각할 수도 있지만 이 '단단한 격리'로부터 '부드러운 격리'로의 이행 과정에서 어떤 공범관계가 암묵적으로 생겨납니다. 그것은 바로 의료와 정치의 결탁, 즉 '지와 권력'의 결탁입니다. 고대의 권력은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동안 점차 그 윤곽이 애매해집니다. 그것은 권력이 비권력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은 감촉이 부드러운 이성적인 '대리인'인 '학술적인 지'를 통해서 오히려 철저하게 행사됩니다. 이것이 푸코의 생각입니다."
뒤이어 신체가 하나의 사회제도로서 지와 권력이 근대사회에서 인간의 '표준화'라는 방향을 목표로 설정했다는 것을 덧붙입니다. 차렷자세나 아침 체조같은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신체의 통제를 통해 생각과 행동을 제어할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푸코와 관련한 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성(性)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인간의 온갖 성적 행위를 망라한 목록을 만드는 것, 그것을 공공화하는 것, '기호'를 공유하는 마니아들을 조직화하는 것, 매춘부타 포르노 그래피를 다루는 성 상품 시장을 세우는 것, 의학이나 정신병리학, 사회학등을 성에 대한 학문적 지식으로 편성하는 것 등 이런 무수한 흐름이 '성의 담론화'라는 담담한 거대 강의 흐름을 구성하고 일사분란하게 한방향을 향해 흘러가는 '통제된 욕망'의 모습에서 푸코는 근대 권력 장치의 효과를 간파합니다.'
4장 바르트와 <글쓰기의 영도>
소쉬르가 예언한 기호학을 실제로 전개시키고 문하가 텍스트, 영화, 무용, 종교의식, 재판, 패션, 자동차, 유행, 광고, 음악요리, 스포츠 등 눈에 들어오는 모든 문화현상을 '기호'로서 읽고 해석한 것이 롤랑바르트였습니다.
저자는 롤랑바르트의 견해 중에서 '에크리튀르'와 '저자의 죽음'이라는 두 가지를 설명합니다.
랑그가 '외부로부터의' 규제라고 한다면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무엇인가 말을 할 때 우리의 언어 운용을 '내부에서' 규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쓰는 사람의 영광, 뇌옥, 고독'인 개인적이고 생래적인 언어 감각을 '스틸'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우리의 언어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이 두가지 뿐이 아닙니다. 바르트는 이들 외에 제3의 규제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에크리튀르'입니다.(우리말로 '글쓰기'나 '복합적인 글쓰기'등으로 번역)
에크리튀르는 집단적으로 선택되고 실천되는 '선호'입니다. ... "에크리튀르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가 지닌 '자연'적 어법에 부여해야 하는 사회적 장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바르트는 썼습니다.
독자의 탄생과 저자의 죽음
텍스트란 직조된 것입니다. 저자는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이것을 직조했는가라고 묻습니다.
5장 레비스트로스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인류학자입니다. 친족구조를 음운론의 이론 모델로 해석하고 <친족의 기본 구조>나 <슬픈 열대>를 저술하는 등 인류학의 현지조사를 통해 학문적 업적을 쌓아올린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장 폴 사라트르의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실존주의에 실질적인사망선고를 내리게 됩니다.
또 인가의 본성이 '증여'에 있음을 강조하였는데요. 증여와 답례의 반복 덕분에 사회는 동일한 상태로 머무를수가없게 된다는 것을 첫번째 효과로 들었는데, 이는 마르크스가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한 말과 이어진다고 합니다. 증여와 답례의 또다른 효과는 내면적인 것으로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타인으로부터 받는 방식으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라는 진리를 되풀이해서 새겨넣는다고 합니다. 레비스트로스의 책을 찬찬히 읽어본다면 좀 더 잘 이해가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의 본성이 타인과의 관계와 주고받음에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인'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규범을 수용하면서 '인간이 된다는'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은 분명 푸코와 통하는 '탈 인간주의'의 징후를 보여줍니다. 탈인간주의는 인간의 존엄이나 아름다움을 부정한 사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웃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자기희생과 같은 행동이 인간성의 '잉여'가 아니라 인건성의 '기원'임을 간파한 레비스트로스의 통찰을 어떻게 반인간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6장 라캉과 분석적 대화
라캉은 두번의 사기를 통해 어른이 된다고 합니다. 거울단계에서 통합되었지만 좌우반대인 자아를 처음 발견하게 되고 오이디푸스단계에서 아버지로부터 무능함을 깨우치면서 사회성을 교육받데 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외의 내용은 구조주의에서보다는 정신분석학에 덧붙여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6장은 줄이겠습니다.
관점에 따라 같은 주제도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으며 시대나 필요에 따라 다른 체계를 갖출 수도 있음을 생각했습니다. 구조주의는 그 내용에서도 기억하면 좋을 것들이 있으나 그 형식이나 체계, 말 그대로 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문화를 연구하고 새로이 만들어 내는 이들에게 중요한 도구가 아닐까 합니다.
문화기획자 리타의 feelosophy
문화기획, 전시기획, 문화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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