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키워드 오덕학, 오덕이 쓴 우리 문화 이야기
흔히 책을 내면 '자식을 내놓은'이라는 수식을 붙이고는 하더군요. 이 책을 쓴 서찬휘 작가야말로 이 책이 거의 자식과 다름 없지 않을까 합니다. 책에는 자신의 코스프레 사진, 이미지 자료가 없어 직접 그린 그림, 산업에 관한 인터뷰 정리 등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할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두고 볼 책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당시의 '지금 여기'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면면도 분명 그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했지요. 그를 처음 알 게 된 것이 2009년이니까 햇수로 치자면 벌써 9년 째네요. 그는 만화 관련 칼럼을 쓰고 만화를 주제로 한 사이트 만화인http://manhwain.com을 운영하고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그야말로 만화 오덕입니다. 그래서 그의 출간 소식이 반갑고 그 자식같은 책이 궁금해지더군요.
'자생형 한국산 2세대 오덕의 현재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키워드 오덕학'은 웹툰, 오타쿠, 코스프레, 야오이, 백합, 짤방과 모에 등 13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문화콘텐츠학과 다니는 학생으로서도 문화기획을 하는 기획자로서 우리네 하위 문화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자 한 이 책이 반갑기만 합니다. 예전에 읽은 'B급문화, 대한민국을 습격하다.' 에서 리타는 "키치, 캠프, 컬트 등의 의미를 돌아보고 관련 텍스트에 대한 B급 리뷰를 던지면서 스스로 B급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스로 비주류로 밀려나거나 밀려난체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솔직하지만 저속한 행동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거기에는 통쾌함, 쿨, 재미가 있어야 하며 이를 따르는 추종자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달리겠네요."라고 리뷰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추종자들이 만들어 낸 오덕문화에 대한 것이기에 이 책과 저 책을 오가는 즐거움도 소소하게나마 있었습니다.
작가가 밝힌 것처럼 20년의 오덕 생활을 해서인지 소위 글빨로 먹고 사는 칼럼니스트여서인지 글에서 '서찬휘'냄새가 나더군요. 이름을 가리고도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는데 그런 부분이 부러웠습니다. 그 특유의 시니컬하면서 위트있는 말새가 책을 금새 다 읽어 내리게 합니다.
워낙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만화와 그 인접 영역에서 발달하다보니, '키워드 오덕학'에서도 만화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후반부에 논의했던 문화콘텐츠와 하위문화, 서브컬처로서 그 내용을 발산시켜보지만 이 책은 어쨌거나 만화를 중심으로 한 오덕의 문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갈 길이 멀어 갓 입덕하는 입장에서 오덕의 문화를 연구해야 하는 입장이다보니 평소 오덕들의 사고방식이나 용어들이 궁금했다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은어같은 용어들에 대한 해석만을 나열한 것이라면 덜하겠으나 이 책은 그 용어와 그 용어와 맞닿은 여러 현상들에 대해 (말투와는 달리) 친절하게 설명을 달아주고 있어 가치가 있습니다. 오타쿠처럼 오덕이 일본어에서 온 것이기에 모에, 츤데레, 코스프레 등의 어원이나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한 내용을 일본의 기사 등을 일일이 찾아 그 어원을 분명히 하고자 애쓰고 한국에서의 쓰임새와 뉘앙스를 충실하게 풀어 설명한 점이 고마웠습니다.
책을 읽다가 궁금했던 점은 어떻게 이들 13가지의 키워드가 나왔으며 이같은 순서로 설명을 달게 되었는지입니다. 리타가 책이라면 그 안에서 기승전결이 만들어지고 하나로 묶여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에서 어떤 흐름을 타고 읽어야 하는가를 궁금해했습니다. 굳이 끼워넣어보자면 크게 세가지 혹은 네가지의 큰 장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우선 생각나는대로 메모를 붙여두자면 만화 혹은 만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의 산업, 창작, 향유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가는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키워드를 나름 다시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눠본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웹툰, OSMU, 기록과 통계, 지역 캐릭터 / 야오이 그리고 BL, 백합, 모에, 츤데레에서 얀데레까지, 병맛 / 짤방, 오타쿠, 서브컬처, 코스프레
BL, 백합 그리고 모에나 츤데레에 대한 정의를 정실하게 하고 그 편견에 대해 바로잡고자 애쓴 것이 많이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다른 용어들도 그렇지만 자유로운 곳에서 쓰이는 용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마구 쓰고 그 의미를 후려쳐서는 안되겠습니다. 산업현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나 작가들의 입장, 즐기는 입장에서 만화를 사랑하고 그로인해 만들어지는 오덕 문화에 대한 진정성이 이 책을 두고 읽히게 하지 않을까 합니다.
언어라는 것이 생명이 있어서 그 태어남과 자라남 혹은 사라짐이 있을테니 아마 이 책도 새롭게 펴내거나 시리즈로 몇차례 이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구태의연하게 위에서 리타가 나누어 놓은 큼지막한 장 속에 여러 키워드들이 서로를 기대가며 촘촘하게 서있지는 않을까도 기대되네요.
문화기획자 리타의 fee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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