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인 에놀라 홈즈가 속편을 들고 찾아왔다. '에놀라 홈즈'는 셜록홈즈의 여동생이라는 설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시리즈다. 코난 아서 도일이 만든 셜록이라는 탐정 캐릭터는 단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적 인물로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로서 다양한 편집증적인 괴팍한 성격과 실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세계관 안에서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셜록은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하였고 처음 공개된 지 10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에놀라 홈즈'의 원작자인 낸시 스프링어도 어린시절 꾸준히 셜록을 읽으며 성장하였으며, 마침내 셜록 세계관에 여성 캐릭터를 추가하였다.
워낙 셜록의 인지도가 높고 그 세계관이 공고한 탓에 후광효과로 유명세를 얻은 에놀라는 그만큼의 비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원작에서는 셜록의 형인 마이크로프트가 조금더 원작과 가까운 캐릭터로 설정되었다지만 영화에서는 그저 영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갈등 상대자로만 작용하는 등 기존 세계관, 기존 셜록 팬들이 알고 있는 캐릭터성에 대한 손상에 대한 우려가 큰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놀라 홈즈'는 전편에 이어 2편에서도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고 있다. 경직된 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나가는 우당탕탕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1편에서 여성 참정권을 중심으로 남자 중심의 기득권 세력을 유지하려는 보수와의 갈등을 다루었다. 기존 영화에서의 남여 캐릭터 클리셰를 어느정도 극복하려는 시도도 있으나 하이틴 영화에서의 어린 남여 주인공의 로맨스 코미디 설정도 흥행을 위해 살짝 흩뿌려진다.
초기 패미니즘은 단순히 기존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우위에 올라선다거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결 구도로 남자를 대상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의 삶이 현재와 미래의 삶과 달라졌고 그 변화에 따라 역할이 변화하는 만큼 변화된 사회역할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에 관한 수정이 요구하자는 것이었다.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지 동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1편에서는 엄마의 실종사건으로 시작한다. 에놀라의 엄마는 사회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인물로 에놀라를 어렸을 때부터 기존 교육과는 다른 방식의 교육과 생활방식으로 양육하였다. 에놀라의 상대 캐릭터인 듀크스베리 자작은 의회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고자 하는 법률 발의에 찬성을 하는 급진적 인물로 그려진다. 모두가 아는 에놀라 둘째 오빠 셜록은 에놀라와 엄마를 떠나 런던에서 바쁜 탐정생활로 10년 여동안 별다른 왕래나 연락이 없었고, 가문의 가장이자 모든 재산의 주인자격인 큰 오빠 마이크로프트 역시 런던에서 정부일로 바쁘고 어머니에게 자신의 재산을 위임하였으나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에놀라를 기숙학교에 보내고 사교모임이나 정략결혼 등의 그 시대의 여성의 삶의 수순을 따르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에놀라 홈즈'는 엄마의 실종사건 혹은 결국에는 하나로 연결지어지는 듀크스베리 자작 실종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이 셜록의 추리와 비교했을 때 개연성이나 사건 자체의 치밀도가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실제 공간과 인물을 떠올리면서 실존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셜록 시리즈와 비교할 때, '에놀라 홈즈'가 보여주는 시대상과 사건 등은 실제와 비교할 때 다른 것이 많아 이질적이라는 부분도 힘을 빼는 부분으로 지적된다.
참정권은 정치에 의견을 낼 수 있는 권리이다. 놀랍게도 여성의 참정권은 계급, 인종적 차별에서의 참정권의 회복에도 뒤처진다. 1880년 전후로 흑인, 하층민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과 비교할 때, 미국은 1920년대, 유럽은 늦으면 1940년대 그리고 가장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한민국 정부가 시작된 1948년, 일본도 비슷한 시기인 1945년에야 이르러 여성의 참정권이 주어졌다. 여성이 피선거권을 가지고 직접 정치를 하게 된 것은 그 것보다 늦어졌다. 즉,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빠른 시기를 기준으로 보아도 고작 100년 가량된 것이다.
에놀라의 시대에는 여성은 물론 평민 남성들도 참정권을 가지지 못한 시대이며, 상대적으로 기득권에 들어있던 에놀라의 엄마가 사회 변화를 주장하면서 참정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는 설정에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2편에서 에놀라는 본격적으로 탐정 사무소를 열고 사건을 풀어낸다. 이번에는 여성 노동자의 환경에 관한 내용이다. 이는 여성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지만 그 시대 성냥공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이 여성노동자였던 점에서, 사회적으로 위축된 평민 여성의 신분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 점에서 1편과 연계성을 가진다.
'에놀라 홈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기존 캐릭터와 세계관에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여 마치 스핀오프 스토리를 구성하여 확장한 것과 같은 효과를 노렸다는 점에서 콘텐츠 기획에 재미있는 사례가 될 것같았기 때문이다. 만화, 소설 원작이 큰 자본을 들여서 영화나 게임으로 만들어질 때, 별도의 각색자가 기존 원작자의 저작권을 사들여 만들어 내는데, 기존 잘 알려진 세계관과 캐릭터를 활용한 새로운 캐릭터 이야기가 별도의 원작의 지위를 가지려면 여러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다. 먼저, 기존 세계관을 창조한 원작자의 후광과 그늘을 극복해야 한다. 당연히 기존 세계관이나 캐릭터를 임의로 변형하거나 전복하는 것은 기존 원작자와 팬들에게 많은 부침이 예상된다. 또한 새로운 원작은 (신화의 반열로 오른) 기존 원작의 캐릭터, 배경 크고 작은 사건의 연계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약조건과 한계를 안고 있다. 그래야만 기존 세계관의 인기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원작이 사랑받는 것은 원작자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술, 구독자들이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요소를 적절하게 수용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센스를 놓치고는 단순히 세계관과 캐릭터를 빌려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원작을 갉아먹고 자기 원작을 성공시키기에는 오히려 허들이 되버릴 것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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