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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브랜드 리뷰/영화 리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만한 로맨스가 또 있을까

by feelosophy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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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하고 얕다고 말해도 좋다. 오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다시 보고 나는 딱 이것만한 로맨스가 없다고 결론 지었다. 물론 다음 볼 때까지만 유효한 정의다. 그 때는 또 어떤 감상을 적을 지 모르니 말이다. 

 나는 항상 소피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왔는데, 그동안은 줄곳 그녀가 저주에 걸려 90 노인이 되었는데도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좌절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그게 청소일이라도)을 찾아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 얼마나 주변의 상황에 변명을 늘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가 하고 말이다. 오히려 그 저주는 해피엔딩이 되면서 작은 공방에만 쳐박혀있던 시골 어린 소녀를 세상으로 꺼내놓고 더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똑바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선물이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자유에 대한 상징을 표현하고 아름다운 해변 도시, 유럽 대도시를 초월하는 중의적 공간이 되어 해리포터의 9와 4/3 정거장과 같은 흥미로움을 선사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런데 거기에는 과거의 두 주인공의 인연이 맞닿은 공간이 더 크게 다가오면서 공간의 초월과 시간의 초월, 늙은 소피가 점차 생기있는 젊을 찾아 거꾸로 시간을 돌리는 서사가 중첩되면서 로맨스를 더욱 운명처럼 만들어 놓았다.

어느 색 문으로 들어가 볼 것인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살 가치가 없다고 흐느끼던 나르시스트인 하울이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전쟁터로 향하는 것과 소피가 네가 어떤 것이든 사랑한다고 고백해버리는 모습에서 사랑과 용기는 한끗차이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린 아이와 늙은 할머니, 젊은 남녀가 하늘을 나르는 공간에서 정말 '행복'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하려는 듯한 이미지는 두고두고 나에게 살아갈 에너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참 좋은 이유는, 마케팅에서 말하는 그 포트폴리오 구성이 잘 되어 있다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대상이 한결같지가 않다. 딱 가족 영화라고 하기도 애매하거나 아이들이 보기에 동심을 그렇게 자극하는 것이 아닌 작품들이 있다. 디즈니와 상대할만한 작품이라면 벼랑위의 포뇨, 토토로 정도랄까. 토토로도 조금은 비껴있지만 말이다. 

 특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성인용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OST부터 아름다운 두 주인공의 운명같은 사랑이 특별한 공간에서 서로의 헌신으로 반짝반짝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소피는 하울의 공간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청소다. 그동안의 묵은 상념과 슬픔을 털어내는 데 청소만큼 좋은 것이 없는 듯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개운해진다. 이 영화에서 소피는 두번의 청소를 한다. 한번은 자기의 저주를 풀어보려고 길을 나섰다가 처음 하울의 성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두번째는 하울을 사랑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부서진 집안을 털어낸 것이다. 마치 텅빈 마음을 가진 주인, 발이 묶인 불꽃 악마, 아직은 꼬마 아이의 가득찬 결핍을 털어내듯 말이다. 거기에 하울이 마법을 써서 리모델링을 하는 장면에서는 이들의 해피엔딩을 기도하게 했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과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

 쓰다보니 정말 그렇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훌쩍 여행을 떠나본다면 가보고 싶은 이국적인 해변 마을이나 고풍스러운 대도시 혹은 모험의 세계를 보여주고 마음만 먹으면 그곳으로 데려다 줄 것 같은 믿음을 준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 소녀가 성인이 되고 다시 늙어가는 과정에서도 반짝이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삶이 결코 하찮거나 괴로운 것이 아니라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결국 내 삶과 나 자신과의 사랑을 공고히 하게 만드는 마법이고 이 둘의 사랑을 만나볼 수 있는 한, 나는 계속해서 힘을 얻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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