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초등학생들만 추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대학생 뿐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여름의 쨍한 자연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른들까지도 애니메이션을 보고도 오랜 기간 잔상이 남게 되는 것은 이 애니메이션의 감독의 작품 성향 덕분인 것 같다. 신짱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던 하라케이이치는 아이들 대상의 애니메이션에도 어른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넣는 것으로도 알려져있으며, 만화나 그래픽노블 외에 아동 문학을 원작으로 각색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알려져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익숙한 지브리나 픽사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애니메이션 지문을 감상하는 계기가 되어 즐거웠다.
개봉 시기와 맞물려, 대 히트를 친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빗대어 마케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센과 치히로에서 경험한 일본의 토속신앙, 요괴에 대한 흥미로움이 이어진 이유도 있을 것이며, 기존 만들어 놓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기대하는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지만 스토리는 새로운 생명체와의 조우와 적응기,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탐구, 외부적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 인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야기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자리를 잃은 다른 존재들에 대한 생각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 내에서의 폭력성, 따돌림에 노출된 아이들의 모습, 미디어에 의해 일상이 어떻게 흔들릴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비단 이 애니메이션이 개봉된 그 시대만의 문제는 아니기에 지금 보아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실사 영화로는 만들지 못하는 상상속 캐릭터인 갓파 쿠의 등장과 강아지 아찌와의 교감, 갓파의 신기한 능력이 발현되는 이미지는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을 극대화 시킨다. 게다가 갓파쿠의 동료를 찾아 코이치와 기차를 타고 떠나 강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며 만나는 물속에서 바라본 반짝이는 하늘의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자유롭고 아름다운 이미지로부터 더더욱 머리 위 접시를 적시어 살아가는 파충류와 인간의 중간쯤 되는 생명체인 갓파가 에도시대의 인간의 개간에 의해 삶의 공간을 잃어 현재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의 고민을 함께 해보게 된다.
쿠는 인간 친구를 만나고 제법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살아가야 할 곳은 도시에서의 인간들 사이에서는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오래전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미라 팔을 짊어지고 자기와 비슷한 존재들을 느끼며 자기 스스로의 삶을 살아내려는 마지막 다짐은 애니메이션은 끝났을지언정 끝난 것이 아님을 안다.
이야기를 벗어나 <갓파쿠와 여름방학을> 애니메이션의 큰 특징을 꼽아보자면, 캐릭터들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움직임이다. 마치 누군가가 그려낸 것이 아니라 정말 존재하는 인물인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러한 의미이기는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코이치가 쿠의 화석을 발견하기 직전 걸려 넘어질 때나, 쿠와 씨름을 할 때의 움직임이 무척 사실적이다. 쿠의 동생인 히토미의 유치하고 어린 아이의 표정과 몸짓이 너무 살아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나잇대의 나의 딸의 모습을 떠올렸다. 싫어하지만 정이 들어서 자기 감정을 실컷 드러내놓는 어린 아이는 정말 사랑스럽다. 뿐만 아니라 같은 입장이라 감정이입이 더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코이치의 엄마가 아들을 살뜰히 챙기는 마음이 담긴 표정과 몸짓이 눈에 들어왔다.
캐릭터를 과장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의 효과를 난발하지 않아 수수한 이 평양냉면같은 애니메이션은 내공 깊은 배우들이라야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이라 영화로 만들지 못한 영화가 아닌가 한다.
여름방학, 여름 휴가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이 애니메이션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 자신해본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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