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집안이나 마을에 경사가 있을때에는 국수를 해서 먹기도 하고 귀한 요리에도 하다못해 당면이 들어가기도 합니다.이렇게 면은 소화도 잘되고 길죽한 생김새는 장수를 의미하기 때문에 두루두루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또 '후루룩'하고 입술의 떨림 속에 휘감겨 들어가는 면발의 미끈하고 쫄깃한 감촉은 먹는 재미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죠.
짜장면이나 라면 혹은 국수같은 면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우동 또한 반가운 대상이 아닐 수 없으나 사실 면요리는 주메뉴라기보다는 간단하게 먹는 별미로 인식하고 있었어요..
이러한 가운데 찾아간 우동집에서는 사뭇 다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더군요. 물론 함께 간 분이 미식, 맛집 탐방에 조예(?)가 깊은 터라 저는 그냥 '우와~'하고 따라가서 더 그런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약간 이른 시간에 방문한 가게라서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세 명이 창밖을 바라보는 자리에 나란이 앉게 된 것은 독특하다고 해야할지 황당하다고 해야할지.
지인의 말에 따르면, 가게 이름에 '제면소'라는 이름을 넣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자부심이 높아야만 하다는 군요. 전문점도 아니고 면을 만들어 낸다는 다소 딱딱한 작명센스는 그만큼 장인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이곳은 우동의 면발에 무게를 두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가장 안쪽 벽에 다양한 그릇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밥 국 이외에 다른 반찬은 함께 먹는 사람과 같이 나누어 먹는 한상차림인데 비해 일본은 각자 따로따로 차려 먹는 경우가 많고 반찬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이 한그릇 음식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 갔을 때에도 한 그릇 안에 다양한 재료들로 마치 그림을 그리듯 올려진 메인 하나와 단무지 비슷한 작은 그릇이 딸려 나오는 정도였어요. 그렇다 보니 그 한그릇에 담기는 정성이 결국 온 식사를 가늠하게 되는 것일테고 전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하얀 도기나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투박한 우리 그릇과는 달리 이렇게 화려하고 하나만으로도 작품이 될만한 그릇들이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뉴판과 국물에 뿌려먹는 시치미와 독특한 모양의 수저(국자라고 해야하는지 잠시 고민했어요.)와 젓가락이 담긴 통이 있습니다. 홍대라는 장소답게 창밖 골목길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추운 겨울을 가르듯 지나가는 행인이 보이네요. 여기서 따뜻한 우동을 먹으면서 창밖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드디어 우동이 나왔습니다. 흔히 보아오던 우동에 비해 국물이 진하면서 투명하고 향이 진하게 우러나왔어요.
위에 동도오 떠 있는 대파 보이시죠? 대파 특유의 시원한 맛이 국물의 느끼하고 짭조롬한 맛을 달래주더군요. 삼키는 맛이 아니라 몇가지 맛이 어우러져 나름 깊이가 느껴졌어요.
독특한 모양의 수저에 이렇게 면을 건져 올려 보았습니다. 탱글한 면발이 보이시나요? 역시 지인의 첨언에 따르면 면발은 자고로 탄력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을 놓쳐서는 안되고 그 익힘 정도와 국물이 베어든 정도 혹은 국물과 조화를 이루는 질감까지도 고려해야한다죠. 만화 <식객>도 아닌데 먹는 것에 이렇게 심오한 감상을 내놓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저는 먹는 것에는 아주 관대한 편이라서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말이죠. 단순하게 '아주 맛있게'라고 말이에요.
면은 국물과 조화를 낼 수 있는 질감이 중요할 거에요. 특유의 향이나 맛은 아주 작은 부분이 될 것이구요. 반대로 국물은 면발을 따뜻하게 품어내면서 '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치 모델의 체형이 면발이라면 그 아름다운 몸을 부각시키는 멋진 옷이 국물같다고나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면발이 두드러지기에는 촉각, 그것도 혀의 촉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것이라 면발로만 승부를 거는 것은 더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국물이라는 것도 우리나라의 음식 취향이나 유행같은 것에 따라 저주의 음식이 되었다가도 천상의 음싞이 될 수 있는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구요. 결국에는 얼마나 잘 적응시키고 습관시키는가. 길들이는가의 문제로 회귀하는 것도 같네요. ㅎ 그래서 면요리는 오묘하고 재미있습니다.
처음에도 말햇지만 면요리는 왠지 간식이나 별식에 가까워서 조금은 아쉬운 무언가가 있어요. 그래서 사이드 메뉴로 닭과 새우튀김을 시켰답니다. 일본식 튀김의 꽃같이 풍성한 튀김옷을 입은 새우들이 보이시나요? 닭은 튀김옷이 다소 딱딱하고 간장 양념이 베어들어서 그런조 짭조롬했어요. 새우튀김은 그윽한 맛이었습니다. ^^
친절하게 메뉴판도 업어왔어요. 맥주도 판매를 했었군요.
직원의 모습입니다. 가게 유니폼은 이름이 적힌 남색 티셔트에 압치마 그리고 머리 수건이에요. 서빙이나 음식 주문에서 특이한 점은 없었어요.
15평 정도 되는 작은 가게라서 그런지 천장은 오픈해두었고 포인트로 우동을 들고 있는 여자를 센스있게 그려두었습니다.
여름의 냉면만큼이나 겨울의 우동은 제철 요리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냉면에 비해 우동에 대한 인식이 다소 대단한 음식으로 대우해주지 못해서 그런지 우동을 먹고 나와도 왠지 심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시간이 좀 지나서 이곳 우동이 생각이 난다면 아마도 좋은 맛집으로 인정해볼만할것 같네요.
홍대 입구 바로 오른 쪽 골목으로 내려가면 보입니다.
내리막 골목길에 물이라도 뿌려두면 썰매타도 되겠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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