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가 유종의 미를 거두며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여사장과 남비서의 다소 오글거리는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자칫 유치하고 뻔한 스토리를 배우가 가진 매력과 캐미, 연기력으로 극복했다고 본다.
특히 이 드라마를 통해 멜로 본격적으로 멜로 연기를 선보인 이준혁은 전작 캐릭터가 가졌던 이미지와 대비되는 캐릭터였기에 도전일 수 있었으나 오히려 그런 반전 매력에 힘을 받아 인기를 누렸다.
<비밀의 숲>시리즈와 스핀오프인 <좋거나 나쁜 동재>에서의 서동재는 그야말로 선악 경계에 선 찌질한 검사 캐릭터를 얄밉게 연기했다. 천만 배우로 등극하게 한 <범죄도시 3>의 주성철은 야비한 경찰의 모습을 잔혹하게 보여주며 3대 빌런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사실 이준혁은 데뷔한 2007년 부터 조연이라도 눈에 띄는 외모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이미 2009년 <수상한 삼형제>를 시작으로 이후에는 줄곳 주연을 맡으며 다양한 드라마에 성실히 출연해왔다. 성실한 작품활동만큼 다양한 캐릭터와 직업, 장르를 연기했는데 시청자들의 인상에는 장르물에서 빛나는 외모를 내세우지는 않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물론 특별출연에서 질투심을 유발하는 멋진 능력자로 나타난다거나(<어사와 조이>, <그해 우리는>) '잘생겨서 동안인'이라는 캐릭터 소개가 붙은 작품(<비밀의 숲>)들도 있었고 대놓고 처연미를 연기한 멜로물(<시를 잊은 그대에게>)도 있었다.
반면 한지민은 이준혁과 달리 멜로물의 여주인공 역을 다수 해왔다. 여배우가 남자배우에 비해 장르극 등 출연 폭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망울과 해사한 미소, 다정한 목소리가 여리하면서도 똑부러진 캔디스타일의 여주인공 역할에 딱이다. 물론 <이산>, <봄밤>, <아는 와이프>, <우리들의 블루스>, <힙하게> 등 주연급 여배우로서 스펙트럼이 넓었던 것도 오랜 기간 연기를 해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춘 이 두 배우의 조합은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그 이미지에 대한 기대가 어느정도 있었던 것임에도 큰 반대는 없었다. 다만 로맨스 멜로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준혁과 최근 공개열애를 시작한 한지민이라는 것이 약간의 리스크는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였을까 홍보를 위해 출연한 <틈만나면>에서 미션을 성공하고 기뻐하며 자연스럽게 안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그들의 드라마 속 캐미를 기대하게 되었다. 선한 이미지의 두 사람이 작은 미션의 성공에도 아이들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믓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자주 박서준,박민영의 <김비서가 왜그럴까>와 비교가 된다. 사장과 비서와의 로맨스를 다루었다는 설정 자체가 비교할 수밖에 없으며 완벽한 능력을 가진 비서의 매력에 빠져드는 사장의 변화를 지켜보는 전개도 비교할만하다. 딱 달라붙는 오피스룩을 선보인 박민영만큼이나 셔츠 색상이 이렇게 다양했었나 싶을 만큼 수트빨에 힘준 이준혁을 보는 재미도 그렇거니와 포마드머리로 정형성을 강조한 박서준의 외향만큼이나 여자 사장의 권위를 한껏 세우려는 듯한 각진 파워숄더의 한지민의 옷차림과 소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에 <나. 완. 비>는 딱 알맞은 수준의 변주를 주고 있다. 일단 남녀의 전복이다. 여사장과 남비서, 연상 여자 연하 남자의 설정이다. 또 금수저 사장은 자수성가 사장으로 변화한다. 플러스 어린시절 상처로 연결된 내력담이 깔려있다.
역클리셰로 등장하는 몇몇 장면에서의 상여자다운 강지윤의 행보에서 카타르시스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유은호를 좋아하게 된 마음이 업무를 방해하는 것을 깨닫고 그 감정을 모른척 하지 않고 당당하게 유은호에게 알리고 자기 감정은 알아서 하겠다며 쿨하게 돌아서는 장면, 그럼에도 좋아하는 감정을 뿌리치지 못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광화문 앞 신호등에서 먼저 키스를 하던 장면, 비밀 사내 연애를 종식시키는 대놓고 손잡고 출근하기 시전 등이 그런 모습이다. 여기에 소소하게 비서 업무 지시나 까칠하게 구는 모습 등이 기존 사장과 여비서 사이의 상하관계와 로맨스 부적응기 과정을 그대로 연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공중파 주말 드라마의 주 시청자 층이 40대 이상 여성이라는 점을 본다면 당당하고 능력있는 여성 CEO가 성격, 외모, 능력 모두 갖춘 연하 남비서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팔리는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이미 학습된 클리셰만으로도 앞으로의 전개는 안전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것도 피로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잘 되었다고 보는 것은 역 클리셰를 담아 알콩달콩 간질간질한 멜로연기를 충분히 감상하면서도 손발 오글어 들지 않도록 전문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헤드헌터로서의 삶을 흥미롭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고립된 개인의 삶을 살아가던 두 남녀의 아픔이 비로소 치유되어 연결되는 주제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에서 각자의 요구조건을 맞추어 윈윈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헤드헌터의 일이다. 자격과 경력을 갖춘 후보자를 기업의 필요 역량에 맞춰 제안하고 연결해주는 과정에서 후보자의 인생을 읽어내는 주인공이 결국에는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운명처럼 자기의 가족을 찾는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 아버지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러브스토리, 원망이나 자포자기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견디어 일어선 여자의 인간적인 모습, 자기의 삶의 가치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많은 시련을 성실하게 살아온 남자의 숨길 수 없는 아우라를 우리는 한 데 묶어 만나게 된 것이다.
역클리셰라고 해서 다 먹히는 것은 아니다. 역클리셰도 클리셰처럼 진부할 수밖에 없다. 비틀기의 수준을 적절하게 하면서도 오글거리지 않을만큼으로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명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스토리의 힘일 것이다. 적당한 운명론, 전체와 중간 에피소드의 강약조합, 화면의 미적 연출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뭐니뭐니해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매력이 얼만큼의 호소력을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이준혁은 밀크바닐라엔젤이라 불릴만큼 뽀얀 피부에 선한 인상을 갖춘 잘생긴 얼굴이다. 큰 키에 벌크업으로 다져진 체격으로 수트빨이 정점을 찍은데다 상대배역인 한지민과의 덩치 차이도 설렐만하다. 섬세한 성격만큼이나 예민미있어 보이는 눈썹, 손의 움직임 디테일도 이상한 데 꽂히는 시청자들을 본방사수하게 했다.
한지민이 사랑에 빠진 눈 연기는 감정이입이 안될래야 안될 수 없다. 술취한 얼굴로 졸고 있던 비서의 콧날을 만지다가 잘생겼다고 마음속 말을 내뱉고는 잠들어벌이는 모습이라던지, 아닌척 직원들 몰래 엘리베이터에서 손을 먼저 잡는 대담함이랄지 당당하면서 자기 감정에 솔직한 여자의 사랑스러움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많은 이들에게 설레는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40대가 되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배우의 큰 재능이다. 오랜기간 별탈없이 연기를 이어온 두 미혼의 배우가 달달한 연기를 마칠 때마다 등장하는 현커기원설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인기있었는가를 가르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결혼기원, 디스패치 일해라 하면서 이들 영상이나 SNS게시글에 댓글을 다는 팬들의 농담반진담반의 마음이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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