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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플랑크톤, 미생 말고 미생물이 돼버린 청춘에 대하여

by feelosophy 202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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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선보인 <Mr. 플랑크톤>은 로드무비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플랑크톤은 바다물 위에 둥둥 떠 다닌다. 어딘가 뿌리를 내리거나 서식지를 가지고 일정 바운더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인 해조와 재미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수년 전 드라마로도 인기를 끌었던 윤태호의 만화 <미생>은 스펙하나 없는 젊은이의 회사적응기를 다뤘었다.  장그래는 흙수저라도 집이 있고 바둑이라는 자기 꿈이 있었다. 생사가 불문명하다는 미생이라지만 완생을 바란다는 점에서 목적이 있고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Mr. 플랑크톤>은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내려간다. 해조와 재미는 아예 흙수저보다 저 아래 밑바닥의 미생물에 견준 청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눈씻고 봐도 주변에는 어른이 만들어준 그늘이 없다. 온갖 갑질과 천대 속에서 가장 만만한 대상이 되었다. 해조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매일이 마지막인것 처럼, 재미는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고 웃어야 하는 불쌍한 아이로 자랐다.

아니 미생도 서러운데 이제는 미생물이라니,

어쩌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잠재력을 참 어른 아래서 스스로 성장하는 드라마는 정말 이제 드라마 속에만 있는 것일까. 그렇게 해사하게 생긴 장그래가 성장하는 과정을 감격적으로 지켜보던 것이 이제는 맨땅을 나뒹굴며 세상 억울하게 시한부 판정을 받아 죽음을 앞둔 망할 운명의 주인공의 인생을 지켜봐야 한다니 속상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미생'과 미생물'Mr. 플랑크톤'으로의 10년 동안 세상은 더 각팍해진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 글은 스포일러 포함되어있으니 참고해주세요)

 

< Mr. 플랑크톤>의 해조와 재미는 부모에게 버려졌다. 해조는 승협으로 살았던 어린 몇 년을 제외하고는 자기 핏줄에 목메는 아버지의 외면을 견뎌야 했다. 재미는 보육원에서 입양이 되기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망 뿐이었다. 지지리 복도 없이 태어난 것이 서로 같은 처지라 두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누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는가. 왜 다 있는 부모 없이 이 차가운 길바닦에 서럽게 살아가야 할까.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사람들의 멸시와 무시를 당하며 이들은 이를 갈아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서로를 보듬고 행복하게 살고만 싶었는데 그것마저 녹록치 않다니 엇나가고 싶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들은 각자 자기를 세상이 알아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 보기로 한 것 같다. 조역으로 나오는 어흥, 봉숙, 까리, Jhon NA 역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해조는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심부름 센터 사장이 되고 시한부 판정을 받고나서는 생물학적 친부를 찾아 나선다. 재미는 으리으리한 종가집에 (가짜)임신을 내세워 종부로 들어가고자 한다. 재미를 사랑하는 종가집 종손인 어흥은 호랑이는 커녕 호랑이 엄마 밑에서 기죽은 꼬리 말아 내린 똥강아지 신세에서 재미를 통해 해방을 느꼈다. 봉숙은 자기와 같은 모습인 해조를 아들처럼 보살피며 자기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고 Jhon NA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리운 눈매가 깊은 사내다. 
대개 이런 로드무비는 주인공이 삶을 벗어 던지고 모험을 넘어 자기 파멸을 희극으로 받아들이며 슬픈 결말을 맞이하곤 한다.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절벽에서의 질주처럼 말이다. 그래서 극 초반 해조가 설원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엔딩으로 암전되었을 때 공허함보다는 오히려 해방감같은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친부 찾아 전국을 떠돌며 만난 후보들의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며 진짜 아버지는 길러준 아버지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재미 역시 낳아준 친모를 만나고 진짜 생일도 찾게 되었지만 다시 또 외면하는 엄마를 더이상 그리워하지 않고 홀로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목숨 걸고 핏줄 이을 자식을 보겠다는 아버지와 종가집 대를 이어야 하는 종부인 어머니 범호자는 이 드라마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해주는 캐릭터다. 그 누구보다 자기 핏줄이 가족을 공고히 만들어 내는 것이라 믿기에 이들이 해조와 재미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클라이막스로 다다르게 했다.  
전통적 가족의 핵심은 바로 핏줄이다. 해조의 아빠는 큰 병중에도 정자를 냉동시키고서야 치료 받았고, 종가집 종부이나 아들을 낳지 못해 마음 고생 심했던 어흥 엄마는 하나 뿐인 아들 후사를 이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그러나 해조 아빠는 해조가 집을 나간 후 결국에 자기 핏줄의 아이를 낳고 나서도 끝내 해조(채승협)을 품고 있었다. 엄마 없는 설움을 좋은 엄마가 되기로 한 꿈조차 조기 폐경으로 산산조각난 재미를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해피엔딩이 눈물겹게 만들었다. 

정주행하고 보니 <Mr. 플랑크톤>은 지금 시대의 청춘의 피폐한 상황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다룬 다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장년층의 꼰대스러움에 대한 개탄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어서 더 좋았다. 어쩌면 지금 사회는 핏줄로 묶인 가족의 의미 변화를 감지하고 그에 맞는 자세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했다고 생각한다.

정자가 바뀌어 원하는 자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그래서 살아갈 목적이나 희망이 없다. 라는 절망에서 그래도 내가 세상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지 않은가.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려서 젊은 나이에 죽더라도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찾고 사랑하는 사람과 원없이 여행을 다니며 나라는 사람의 기억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심어두었다는 든든함이 있지 않았는가. 

우리가 숨쉬는 산소의 50%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플랑크톤이다.  가장 미천한 존재인 플랑크톤이라지만 정작 플랑크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들은 그저 그들 나름의 가치를 뽐내며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이 작품을 쓴 조용 작가의 언급처럼 빛을 발하며 반짝이는 순간이 있음을 잊지 말자는 메시지로 훈훈한 과정을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 
https://news.nate.com/view/20241120n25455

"새드엔딩 or 해피엔딩?"…'Mr. 플랑크톤' 작가가 직접 밝힌 결말 [일문일답] : 네이트 연예

한눈에 보는 오늘 : 방송/가요 - 뉴스 :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넷플릭스(Netflix) 시리즈 'Mr. 플랑크톤'이 글로벌 TOP 10 TV(비영어) 순위에 오르며 열띤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Mr. 플랑크톤'은

news.nate.com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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