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텔레비전을 보는데 그야말로 채널을 돌리는 데마다 최현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중파 <라디오스타>, <전지적참견시점>에 TV홈쇼핑에도 나왔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흥행으로 출연했던 요리사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다가 기존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백요리사들도 개개인의 차이가 있어도 인지도 면에서 글로벌적으로 새롭게 업데이트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중 단연 수혜를 크게 받은 요리사가 바로 최현석 요리사다. 이미 다수 프로그램에서 경력이나 인지도나 캐릭터 면에서 심사위원급의 커리어를 만들었는데 도전자로 나온 것 부터 최현석 답다.
<흑백요리사> 제작진은 최현석 등 백 요리사의 유명 요리사들을 출현시키면서 그들에게는 스스로를 다시 증명하는 요리사로서의 신념이나 철학을 펼칠 장을 마련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흑 요리사들은 스스로의 역량을 더 큰 무대에서 시험해보고 싶은 욕구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자기네끼리의 경쟁이 아닌 보다 높은 위치의, 어쩌면 자신들이 올라가고 싶은 요리사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겨뤄볼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흥행을 위한 제작진들의 조커 카드는 최현석 요리사의 출연이었다. 나름의 리스크를 가지고 출연하는만큼 돌아올 수 있는 이익을 계산에 두었을테고 그 합이 맞았기에 서로 윈윈할 수 있었다. <흑백요리사> 제작진과 최현석 요리사 사이의 계산이 맞게 된 지점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백종원의 대중성과 안성재의 파인다이닝의 절충 위치의 최현석 활용
최현석 요리사가 스스로 도전자로 백의종군한 이유는 아마도 사업가적 기질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흑백 요리사> 제작진들도 백종원의 대중성과 안성재의 파인다이닝의 절충 위치로 최현석 요리사를 적극 활용한 셈이 되었다. 백종원이 요리사보다는 사업가의 이미지가 더 크고 대중적이라는 인식에서 고급 정통 요리에 대한 전문적 평가에 고개를 젓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백종원은 단지 사업가적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보이고 넓은 공감을 얻기 위한 전략을 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저 수더분한 충청도 아저씨의 이미지를 가진 백종원이지만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음식과 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개인의 데이터도 풍부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요리 장르와 전문 분야의 스펙트럼이 넓은 출연 요리사들을 평가하기 위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여기에 조금은 덜 알려지면서 명분이 있는 심사자가 필요했다. 백종원과 비교해서 나이는 어리되 대중의 반대 위치의 파인다이닝을 전문으로 하는, 납득할만한 이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안성재 요리사였다. 안성재 요리사는 기존 백종원의 요리에 대한 맥락을 포함한 넓은 식견과 대중성, 글로벌 지향의 기준과 비교할 때 요리 자체의 완성도와 미션 적합성이라는 내부역량에 초점을 맞춰 균형을 맞췄다.
그런데 도전자 중 최현석 요리사는 백종원과 안성재의 중간 쯤 되는 경력과 나잇대에 있으면서 추구하는 요리 철학도 대중성과 파인다이닝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도 중간자적 위치다. 오랜 방송 경력으로 포맷이나 제작자들이 원하는 그림이 어떤 것인지도 잘 이해해서 긴장, 갈등, 극적인 상황 연출에 탁월하기도 하다.
주말 내가 본 프로그램은 <라디오 스타>, <전지적 참견시점>, 홈쇼핑 함박스테이크 방송이다. 일단 <라디오 스타>는 <흑백 요리사>의
2. 안성재 셰프와 대결구도
심사자와 도전자는 명백히 갑을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개인적인 서사를 무시할수만은 없다. <흑백요리사>가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신파를 많이 걷어내기는 하였지만 안성재 셰프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출연자들, 백종원 대표가 심사했던 프로그램의 우승자들의 출현으로 개인적 친분이나 안면이 있는 출연자들이 다수 있었다. 그들의 장점이나 단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심사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안대를 끼고 음식의 맛과 질감과 풍미에만 집중하도록 한 것이 비주얼이나 프로그램 철학 측면에서도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었다.
그런데 안성재 셰프와 최현석 셰프의 관계를 갑을의 관계라기보다는 앙숙이나 대결, 갈등의 관계로 보도록 만들었다. FM, 정석, 정통의 이미지가 강한 안성재 셰프가 보기에는 최현석 셰프는 다소 이단아로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지만 좁은 업계에서 선배로 대우는 해야 하는 위치다. 반면 최현석 셰프는 방송으로나 요리 경력으로나 레스토랑 운영 경험으로도 안성재 셰프에게 뒤지지 않는데 다만 도전자라는 위치에서 꼼짝 달싹 못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만든다.
3. 책임과 임무수행에 집중한 자존심 포기 Vs. 명예 수호
<흑백요리사>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인데 계급별 서바이벌 미션, 개인 미션, 계급 간 그룹 미션, 계급 혼합 팀 미션 등으로 다양한 단계를 거쳐 생존하는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렸다.
나는 우승자인 나폴리맛피아가 요리사로서 맛을 내는 기술만큼이나 스토리텔링이 탁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한가지 운이 플러스 되었다면 두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먼저 최현석이 팀장이었던 팀전운과 최종 결승 부전승자를 위한 미션에서 최현석의 뼈아픈 실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팀장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오너 셰프로서의 책임감과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계급간 미션에서 트리플스타와 계급 크로스 팀별 미션에서 최현석을 팀장으로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게다가 최현석과 최종 미션에서는 단 1점 차이로 1위를 차지해서 부전승으로 결승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이 때 최현석이 자기의 치트키인 봉골레 요리에 마늘을 넣지 않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바람에 결승행을 놓치고 말았다.
최현석은 매번 미션마다 미션의 허를 찌르는 대담하고 저돌적인 방식으로 미션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정공법이라기보다는 허허실실을 노린 비책을 꺼내드는 모략가의 기질이 돋보인 것이다.
계급간 미션에서 해산물을 재료로 한 주제에서는 재료의 선점을 위해 미션 시작과 동시에 재료를 모조리 싹쓰리하는 모습을 보여 상대편을 당황하게 만들더니 나중에는 파가 부족하다면서 상대편에 가서 필요하지도 않은 가리비를 내놓으며 파를 얻어오는 모습으로 상대편의 입맛을 씁쓸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계급 크로스로 이루어진 푸드코트 팀별 대결에서는 심사기준인 매출액에 중점을 두고 현실의 음식점 룰이 아닌 미션만을 위한 전략을 내놓기도 하였다. 바로 매출액을 높이기 위해 객단가를 비상식적인 수준까지 올려놓은 것이다. 대신 재료를 최상급 식재료를 활용해서 구매자로 출연하게 되는 푸드 인플루언서들의 흥미를 높이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그들은 제작진에 의해 섭외되어 출연하는 소비자들로 자신의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금액에 대한 부담보다는 실제 맛이나 음식의 독창성이나 화제성에 더 관심을 가질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다른 팀이 현실의 음식점에서 선보일만한 음식과 가격으로 승부를 걸었던 것과 상반되는 다소 논란인 가격정책이었다.
그러나 최현석이 리더를 맡은 두 미션은 모두 승리를 거머줬고 팀원은 전원 생존을 할 수 있었다.
최현석 셰프는 결승까지 갈 것 같았지만 준결승격인 두부 재료 미션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최현석의 엔진 시동이 꺼진 것은 그 앞 미션인 결승 부전승이 걸린 인생요리를 겨루는 개인 미션이었다. 처음 요리를 시작하고 어려운 시절 창고에서 맛보았던 음식인 봉골레를 그 누구보다 잘 만드는 요리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이야기하며 선보인 음식으로 1등을 하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서 스스로 자신의 레시피의 단점을 밝히고 마는데 바로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마늘을 빼놓고 넣지 않은 것이었다. 이 이실직고(?)가 없었다면 단순히 안성재 셰프의 개인적인 평가에 따라(백종원 대표는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아주 높은 점수를 주었다.) 1등을 하지 못한 앙숙의 형국이 그대로 이어질 판이었다. 스스로의 실수를 숨기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자기 요리에 대한 믿음을 지켜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최현석은 자기 팀원을 지키는 리더로서 다른 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이나 욕을 먹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오히려 팀이 지도록 하는 것이 창피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패배에 승복함으로써 명예를 지키는 것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었다.
4. 자기 실수와 패배를 인정하면서 사업에 활용하는 재치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흑백요리사>에서 선보인 음식을 실제 자신의 레스토랑이나 밀키트, 홈쇼핑 상품으로 내놓고있다. 물이 들어오는데 어떤 배로 탈 지 미리 정해두고 그 배에다가 모터까지 장착한 듯 하다.
봉골레 파스타에 마늘 빼놓은 치명적인 실수를 떠올리는 손님들을 배려한 굵은 글씨의 마늘이 써있는 메뉴판도 재치있다.
<유퀴즈>, <뉴스룸>,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4인용 식탁> 등 최현석 셰프 뿐만 아니라 다른 출연자들도 여기저기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촬영과 방송 공백 사이에도 꾸준히 자기를 증명한 셰프들도 있고, 꾸준히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해오는 셰프들도 있다.
더러는 유명세만큼 구설수도 생기고 있다.
편의점 메뉴 개발이나 개인 음식점의 예약이 꽉차고 네이버지도에는 흑백요리사 출연 요리사들의 레스토랑 정보가 올라와있다.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 하나로 실제 현실 세계와 다른 방송에 영향을 끼치는 바가 이렇게 큰 것을 보면 콘텐츠 속 포맷과 캐릭터의 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기회를 영리하게 알아차리는 사람이 또다른 기회를 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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