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30년 늙어버리게 되면 어쩌나?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다. 바로 SBS 토일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중심 모티브다. 주인공인 이미지는 8년 넘게 공시 준비를 했지만 번번히 떨어지고 영양가없는 자격증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경력만 빡빡하다.
항상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대기조의 삶은 지칠 수밖에 없다. 임시의, 보조의 역할만 하다가는 내 스스로도 그런 존재가 될까봐 불안해진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고 하지만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 청년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정은지가 연기하는 이미진이라는 캐릭터다.
오히려 저주일지언정 30년을 늙어버린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가진 작은 경험들이 그 나이대의 지혜로움으로 포장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오히려 나이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굳어진 마음과 감정을 촉촉하고 부드럽게 간직하고 있어서 더 특별해진다.
이런 고약한 저주에 걸렸음에도 오히려 행복을 찾은 이를 알고 있다.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다. 물려받은 고리타분한 모자 가게를 운영하던 소피는 인생이 단조롭고 그저 주어진 하루를 매일 똑같이 보내고 있었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미진처럼 인생이 가라앉은 것마냥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졌다.
그런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저주는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고 결국 주인공인 미진과 소피의 삶을 스펙타클하고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도록 한다.
어쩌면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마음 속의 불안과 침잠하는 자존감에 대해 주변에 터놓기도 괴롭다. 그런데 꽃다운 청춘의 아름다운 외모가 한순간에 노인의 모습으로 달라지게 되었다면 다른 문제가 된다. 분명 똑같은 사람이고 마음 속의 공허함이나 답답함, 낮은 자신감을 가진 미진과 소피임에도 노인의 몸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청춘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체념이나 편견이 없는 젊은 노인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저주를 풀어내려고 한다. 소피는 비바람을 헤치고 자기의 저주를 풀어줄 마법사를 찾아 나서고, 미진은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에 한걸음씩 수사망을 좁혀 나간다.
나이가 들고나면 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시간도 없고 기력도 없어서 친절함이나 꾸준함을 간직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청년의 마음을 가지면 그런것들을 하나씩이라도 해내기 마련인가보다. 이런 모습을 보면 몸까지 젊은 청년들은 조금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극단으로 몰리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어쨌든 소피는 하울을 만나 자기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하울은 소피를 통해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싶다는 의지를 찾게 된다.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소피였기 때문이다.
한편,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 주인공은 비록 이미진과 계지웅이지만, 나는 오히려 늙은 임순과 그 생기있는 모습을 사랑하는 고원 커플에 더 애정이 간다. 어쩌면 젊음과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상반되는 두 사람인데 고원은 당차고 멋지게 삶을 살아가는 임순에게 반한다는 설정이 하울이 늙은 소피를 아끼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노인 소피가 잠이 들었을 때 원래 소피의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하울은 그녀를 보고 이불을 덮어주며 다독인다. 미진이 밤에는 원래의 젊은 미진으로 돌아오고 낮에는 나이든 임순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차린 것도 고원이며, 그의 비밀이 들통날까봐 적극적으로 백마탄 왕자가 되는 것도 고원이다.
고원의 아이돌 외모는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살 가치도 없다는 하울의 외침처럼 대중에게 원하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생산해야 하는 책임을 대변한다. 1군 아이돌의 핵심 멤버로서 가지는 허탈감이나 슬럼프는 가진 것 쥐뿔도 없는 임순이 뭐라도 해보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대리 해소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저주가 풀린 이미진은 임순을 잃고 그래서 서브 남주인 고원도 이미진과의 사랑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하울과 소피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아름다웠던 투샷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로맨스를 적극 찬성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속이 아름다운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귀하다. 어쩌면 잘생긴 애가 보는 눈까지 있을까.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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