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의 단어장
[판옵티콘] 자발적 종속
권력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도록 하는 장치
판옵티콘은 원래 감옥에서 수감자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제러미 벤담에 의해 고안된 건축양식입니다. 원형으로 배치된 밝은 감옥의 죄수들을 중심에 위치한 어두운 방의 간수들이 지켜볼 수 있게 하는 구조입니다. 죄수들은 간수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두운 곳에 있기 때문에 간수들을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간수가 자신들을 지켜보지 않을 때에도 그들은 마치 간수들의 감시를 받는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이 양식은 감옥 뿐만 아니라 효율적으로 감시와 통제를 해야 하는 병원이나 학교 등의 공간에 두루 활용될 수 있는데, 푸코는 팝옵티콘의 개념을 확장합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판옵티콘을 권력을 유지시키는 구조로 바라보았습니다. 판옵티콘은 권력의 작용과 생산을 가능하게 하며 이것은 현대사회 전반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CCTV, 사이트의 개인정보 수집 등으로 기술적 발달에 준하여 그 개념이 확장되어 '빅브라더'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실제로 작년 카카오톡의 검열에 관한 이슈에 의해 많은 이들이 외국의 다른 매신저 어플리케이션으로 망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관련 기사: 정보 파놉티콘과 카카오의 검열)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오디션, 짝짓기, 혼자살기, 오지탐험 등의 주제로 소위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내놓으며 호응을 얻으려 합니다. 우리는 마치 그러한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간수가 된 것처럼 몰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 프로그램이 설계해 놓은 하나의 판옵티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얼 예능은 진짜 리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정해지고 그 캐릭터에 맞춤한 관계가 설정되고 악마의 편집을 거친 이른바 새로운 '판옵티콘 구조'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구조가 의도한 방향으로 우리는 울고 웃고 반응하게 됩니다. 이 반응이 실제는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진 것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는 실시간 반응을 염두해 두고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나 <복면 가왕>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다수의 미니 채널이 동시에 각 채널을 가지고 방송하고 이를 텔레비전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녹화합니다. 참여자들의 반응은 추려지고 기존 출연자들이 준비한 방송 내용에 중요한 부분으로 덧붙여 다시 편집을 거치게 되어 방송되고 이 방송에 대한 반응은 또 다시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인터넷 방송으로 유입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대표적인 매스 미디어인 공중파 tv의 프로그램에 풀뿌리 미디어를 대표하는 아프리카 등 SNS를 본 떠 만들고 그 곳의 문법을 고스란히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복면 가왕>의 경우는 복면을 쓰고 나오는 노래 실력자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방송의 내용의 연장 선상에서 공개되지 않은 우승자의 신상을 밝히는데 실시간 집단지성을 발휘합니다. 실제로 이번 주 공개된 4주 연속 우승자였던 김연우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지성들이 그가 출연했던 기존 방송 장면에서의 신체적 특징(점, 핏줄, 성량비교)을 찾아내 증거로 들었고 급기야 저작권 협회에 등록된 그의 방송 음원에 대한 자료의 캡쳐 사진까지 찾아내면서 김연우가 우승자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자발적 참여는 사실 자발적이지 않다는 것임을 판옵티콘이라는 구조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판옵티콘은 푸코가 벤담의 개념을 확장하여 고찰한 것에서 나아가 현대 빅데이터의 감시와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한편 문화기획자는 문화 안에도 이러한 구조, 권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판옵티콘이 권력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유지시키고 그 권력을 다시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쁘거나 혹은 필요다거나 하는 판단은 범위와 기획하는 문화 이벤트에 따라 다들 수 있습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가진 그간의 경험의 맥락에 따라 그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법 혹은 구조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문화기획자에게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획의 관심과 호응은 또다시 더 좋은 기획을 위한 밑거름이 되도록 하는 권력 혹은 브랜드자산이 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쩌면 단지 권력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아니라 그 권력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집요한 확인이 아닐까요.
문화기획자 리타의 feelosophy
문화기획, 전시기획, 문화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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