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이과에 공대 학부 출신이라는 구차한 변명에도, 고전을 몇 권 읽지 않았다는 것은 마흔이 넘은 사회인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부족하지만 인문학 박사 학위까지 있지 않은가. 내 MBTI가 ENTJ이고 이과출신에 공학부 출신이다보니 실용, 실리에 도움이 되는 책이 더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도서관에서 밤을 세울때도 공학수학 문제 붙잡고 공학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정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한탄하면서 자판기 커피를 몇잔을 마셨던가.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자기계발서나 마케팅 관련 책을 많이 읽었고 대학원에 들어와서야 스토리텔링, 문화원형과 관련한 책들을 접하면서 서사학, 철학, 역사서와 신화에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결국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깨치우고 실용을 더하는 공학만큼이나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읽히는 것이 중요한 만큼이나 세상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방법이 녹아있는 인문학을 익히는 것은 백년 남짓한 삶을 가치있게 살아가는데 무척 중요한 것이다.
어린 시절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음미하며 고전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매해 새로 등단한 소설가의 글을 읽으며 직접 소설을 써서 공모전에 출품하던 동생을 따라 도서관의 색바랜 두툼한 양장본의 책들을 한두권이라도 펼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하는 것보다는 그저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니 지금이라도 삶와 사람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고전을 접해볼 때이다.
<우리시대 고전읽기>는 나처럼 헐레벌떡 고전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세련된 방식으로 예고편을 주욱 뽑아 친절하게 안내한다. 나처럼 책을 사면 표지디자인을 보고 뒤편의 글 소개나 추천 글을 읽은 다음, 저자 소개를 살피고 목차 훑은 다음 서문까지 꼼꼼하게 읽고 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특히 목차를 볼 때 비교적 더 시간을 들일지도 모른다. 이 책들 중 내가 읽은 책들은 몇권이나 되는 지 세어 보느라 말이다. 그 다음에는 관심있거나 들어보았던 책들로 건너뛰기를 할 수도 있다.
책의 부제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 위한 79권의 책이야기'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읽히는 고전은 미래를 예측하거나 기대하도록 하는 진짜 실용서가 아닌가 싶다. 79권의 책은 7개의 장으로 구성되고 각 장의 소개가 마음에 든다. 1. 문학,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2. 역사, 오래된 미래 오지 않는 과거, 3. 근대, 하늘의 별이 사라진 시대의 자화상 4. 유토피아, 꿈꾸는 듯 그리는 듯, 5.과학, 인간의 또 다른 모습, 6. 인간, 위대한 패배자, 7. 정치, 냉정과 열정사이
목차
책머리에 5
1장. 문학: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1.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최고最古의 서양 고전 16
2. 조지 오웰 『동물농장』: 전체주의 야유한 풍자의 정석 21
3.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서양 문학의 대문자 26
4.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일본학의 효시, 일본문화론의 연원 31
5. 허먼 멜빌 『모비 딕』: 소설로 쓴 “고래학” 겸 “포경술” 36
6.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미국 소설의 독립선언 41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인류의 교사, 지혜의 농부 46
8. 『춘향전』: 한민족의 바이블 51
9. 캐스 R. 선스타인 『스타워즈로 본 세상』: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56
10.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위험도 삶의 한 조각 59
11. 미셸 우엘벡 『복종』: 신은 죽었다? No, 신이 돌아왔다! 62
12.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맹신과 독선에 던져진 불벼락 65
13.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와 개인을 향한 오디세이 68
14.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가장 뜨거웠던 시간과 사랑에 작별을 고하다 71
2장. 역사: 오래된 미래, 오지 않는 과거
1. 사마천 『사기』: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한 권의 책 76
2.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에 대한 최고의 탐사보도 81
3. 돈 오버도퍼, 로버트 칼린 『두 개의 한국』: 한반도 현대사에 관한 최고급 브리핑 86
4. 에드워드 W.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서양 중심주의에 쏘아 올린 조명탄 91
5. 이병주 『관부연락선』: 문학으로 기록한 한국 근현대사 96
6. 『조선왕조실록』: 한민족의 오래된 미래 101
7.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0세기 역사학의 바이블 106
8. 미야자키 이치사다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과거제도는 중앙집권과 문민통제의 기반 111
9. 오무라 오지로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패권의 이동은 화폐의 교체 114
10. 올리버 스톤, 피터 커즈닉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좋은 나라 만드는 주역은 보통 사람들 117
11. 사토 마사루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21세기 신新제국주의의 부활 120
12.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20세기 한민족에 선사한 최고의 책 123
13. 시라이 사토시 『영속패전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독립과 진보가 가능 126
14. 사이토 다카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현재를 지배하는 과거 129
3장. 근대: 하늘의 별이 사라진 시대의 자화상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돈이 빚어낸 인간 욕망의 자화상 134
2. 알베르 카뮈 『이방인』: 실존주의 문학의 금자탑 139
3. 김은국 『순교자』: 한국계 최초의 노벨문학상 후보 144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의 전환 149
5. 프란츠 카프카 『변신』: 소외와 고독의 대명사 154
6.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의 전환 159
7. 플로리안 일리스 『1913년 세기의 여름』: 혼돈과 혼란에서 만개하는 예술 164
8. 다니구치 지로, 세키가와 나쓰오: 『「도련님」의 시대』: 근대에 좌초된 개인들 167
9. 피천득 『인연』: 국민수필가가 보여준 한국인의 거울 170
10. 김병익 『한국 문단사 1908~1970』: 에피소드에 담긴 시대의 진실 173
11.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없이 추락하는 사람들과 사람됨 176
12. 이병주 『그해 5월』: 5.16은 역사의 교통사고 179
4장. 유토피아: 꿈꾸는 듯 그리는 듯
1. 정약용 『목민심서』: 한민족 최고의 경세서 184
2. 장 자크 루소 『에밀』: 교육혁명의 지침서, 인간혁명의 예언서 189
3.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이상 사회를 향한 지적 설계도 194
4. 루쉰 『아Q정전』: 중국의 국민소설가, 민중의 지식인 199
5. 문성길 『넷플릭스하다』: 뉴미디어! 과연 혁명인가, 소외인가 204
6.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사피엔스의 미래』: 잿빛 문과와 장밋빛 이과의 미래 논쟁 207
7. 김대식, 김두식 『공부 논쟁』: 양극화 시대의 정의는 단순한 입시 211
8.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경제의 세계 세력도』: 그래도 아시아는 세계의 새 성장 동력 214
9. 김태환 『우화의 서사학』: 야만과 탐욕의 현장에 내던져진 약자의 생존 매뉴얼 217
5장. 과학: 인간의 또 다른 모습
1. 콘라트 로렌츠 『솔로몬 왕의 반지』: 동물행동학의 상대성이론 222
2.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인간과 과학이 한계를 넓혀가는 방법 227
3. 리처드 니스벳 『생각의 지도』: 적을 알고 친구를 더 잘 알기 위한 문화상대주의 230
4. 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 먹을거리에 대한 애정과 유머를 가지면 모두가 미식가 233
5. 다치바나 다카시 『죽음은 두렵지 않다』: 뇌과학이 알려주는 임사체험과 사후세계 236
6. 브린 바너드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병원균들의 생명력 239
7. 찰스 다윈 『종의 기원』: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 242
8.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무한한 시간과 광활한 우주를 향한 끝없는 열망 245
6장. 인간: 위대한 패배자
1. 볼프 슈나이더 『위대한 패배자』: 실패만큼 성공적인 것이 없다 250
2. 도널드 P. 그레그 『역사의 파편들』: 인문학적 훈련이 만들어낸 일급 첩보원 253
3. 하비 콕스 『예수 하버드에 오다』: 예수에게서 배우는 윤리적 삶 256
4.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다 같이 죽자”에서 “다 함께 살자”로 259
5. 오인환 『고종 시대의 리더십』: 19세기에서 배우는 21세기 262
6. 박노해 『노동의 새벽』: 아직도 어두운 노동의 밤 265
7. 한비자 『한비자』: 부정부패 끝내는 최종병기는 법 268
8. 김구 『백범일지』: 민족해방과 독립혁명의 일대기 271
9. 박지원 『열하일기』: 한민족 최고의 기행문 276
10. 오노 히로유키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유머에 무너진 독재자 281
7장. 정치: 냉정과 열정 사이
1.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근대 정치학의 출발점 286
2.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워터게이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국가권력에 맞선 저널리즘 분투기 291
3. 우치다 타츠루, 이시카와 야스히로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머리가 좋아지려면 마르크스를 읽으라고 296
4. 라종일 『장성택의 길』: 만남은 모든 평화의 시작 299
5. 후베르트 자이펠 『푸틴: 권력의 논리』: 밖에선 폭군, 안에선 성군 302
6. 히가시 다이사쿠 『적과의 대화』: 아무리 적이라도 대화가 필요해 305
7. 강상중 『고민하는 힘』: 삶의 존재증명은 고민하는 것 308
8. 위톈런 『대본영의 참모들』: 왜 일본군은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나 311
9. 이헌모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정상 국가, 보통 국가를 꿈꾸는 일본의 셈법 314
10. 애나 파이필드 『마지막 계승자』: 북한의 생존 전략은 개방 없는 개혁 317
11. 데이비드 W. 모러 『빅콘 게임』: 속고 또 속고, 속이고 또 속이고 320
12. 강준만 『바벨탑 공화국』: 쿠오바디스 한국 사회 323
이 책이 책의 선별과 주제별 장을 나누는 그 구성만큼이나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는 이들이 만족할만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의 글솜씨다. 글은 속독을 하더라도 바깥으로 읽을 때처럼 리듬이 있어야 읽는 데 피로가 덜한데 이 저자의 글은 읽다가 다시 앞으로 다시 넘어가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없는 세련되었다. 그렇다고 일상 에세이처럼 술술 읽히는 글은 아니다. 세련된 문체가 술술 읽어지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이 은유, 비유, 다른 학자들이 알아낸 지식으로 채워져있어서 그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다. 두 세장으로 소개한 79권의 책속 인용이든, 그 책을 비평한 학자들의 평가문이든 저자의 지식으로 다시 소화되어 나온 문장이든 한 문장이라도 다이어리에 따라 적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논어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지식을 쌓기만 하는 자와 공부는 하지 않고 상상만 하는 자의 어리석음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바라면 우주의 온 기운이 나를 도와줄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은 경험이고 그 경험을 채우는 것은 많은 부분이 지혜가 담긴 고전을 읽어 익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관점을 가지고 이 책에서 소개한 고전을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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