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극으로 본 <국화 꽃 향기>에도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여자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책으로 영화로 이미 많은 이들에게 게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전했던 그 <국화 꽃 향기>입니다. 주인공 미주(배해선)이 위암에 걸리지만, 어렵게 얻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치료를 포기합니다. 여기에서도 젊은 여자가 죽음을 담담하게 대면하는 과정이 그려지죠.
삼성역, 상상아트홀에서 10월 9일까지 (공연정보 보기)
그런데 두 여자의 죽음에 임하는 자세가 사뭇 다릅니다. 연재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원없이 해나가면서 오히려 자신의 삶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일상에 주눅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노처녀가 아니라 뭐든지 마음먹은대로 실행에 옮겨서 주위 사람드에게도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시간을 쪼개서 사는 거죠. 지욱(이동욱)의 말처럼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연재보다 어느날 갑작스런 사고로 먼저 죽을수도 있다는 것에서 남은 몇개월의 시간은 짧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입니다.
한편 미주는 다른 삶을 위해 자신을 죽음으로 기꺼이 내던져 놓습니다. 위암 3기로 치료의 가능성이 어느정도 남아있기에 극은 더욱 비극이 되어갑니다. 꿈을 향해 작은 타협도 용납할 수 없었던 당찬 여자에게 늦게 찾아온 아이만큼은 절대 내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죽음을 대가로 치르게 한다고 말이죠.
저는 두 여자의 죽음에 맞서지 않고 죽음과 손잡는 용기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저들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말이지요. 저도 그녀들처럼 죽음앞에 초조하게 공포에 무너지지 않고 나의 남은 시간을 더욱 생기있게 가꾸어 나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낳을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내 생명의 가능성을 단념해낼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이 두 이야기는 어쩌면, 영웅담일지도 모릅니다. 창칼을 들고 피튀기는 결투를 이겨내는 것이 아닐지라도, 순간순간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병마의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는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러러 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 중요한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참을 힘든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내고 가꾸어내는 끈기와 단호한 용기가 얼마나 그들을 빛나게 하는 지를 묵격하였습니다. 저도 조금은 용기있는 여자가 되었을까요?
저는 소설도 영화도 보지 봇한 채 연극을 접했습니다. 슬픈 멜로라는 단서가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죠. 중간 쉬는 시간까지 두시간여를 진행하는 공연에서는 특이하게도 음악이 무대위에서 직접 연주됩니다. 현악기와 피아노가 적절한 음색을 만들어 나가며 주인공의 심정을 증폭시키죠. 극의 시작 전에 음을 다듬는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샘도 함께 다듬어 지도록 한 듯 합니다.
물론 극의 전반부는 두 연인의 만남과 그 주변 인물들의 소개및 경험들이 뒤섞여 기본을 만드는 데 충실합니다. 문학에서 시작한 극이고 온전히 음악이나 노래로만 전달하는 무대가 아니어서 배우들의 대사는 다소 구어체라기보다는 문어체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오리온자리를 밸트를 맨 용사의 모습이 아니라 네모집 속 세개의 별로 묘사한 점이라던가, 소나무처럼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너를 지키겠노라는 말은 연극이 끝나고 나서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공연의 특성상 원작의 영화동아리는 음악동아리가 되었고, 주인공의 노래 솜씨를 발휘할 수 있도록 약간의 뮤지컬적인 요소가 들어가기는 했습니다. (노랫말이나 리듬이 뮤지컬처럼 주요하게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멀티 연기를 한 두 연기자의 모습도 흥미롭게 변주되어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과연 영화는 어땠을까도 싶은 연극이었네요.
덧.
이미 오랜 영화가 되었고, 장진영이 고인이 되었지만, 영화 <국화꽃 향기>포스터를 이렇게 만나보게도 되네요. 사무실 옆 문방구 한켠에 자리한 액자입니다. 연극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대면하니 미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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