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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무기력하지 않은 삶, 주체적 삶을 위한 방향 길잡이

by feelosophy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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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봐야 아는맛, 가봐야 그나물에 그밥, 뻔한 것들이라 무얼 해도 흥미가 돋지 않은가. 어차피 1등이 정해진 게임에서 들러리르 하고 싶지 않은가.  그야말로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먹고, 놀고, 보고, 갈 곳도 많다. 그런데 핸드폰도 없던 어린 시절보다 흥미로운 일이 없는것 같은가.

 

무기력은 현대인의 병증인지도 모르겠다. 에리히 프롬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서 진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무기력의 이유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안니라 감각으로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을 이루고 있는 것에 집중한다면 우리 안에 숨은 가능성 역시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낯설게 보기'라는 말이 있다. 나의 일상에서 감각을 열고 아이의 눈으로 놀라워하고 기뻐하고 그것에서 질문을 찾아가는 집중이 있다면 비로소 나의 독창성, 본질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연출된 현실에 대한 매력을 마케팅을 통해 결정된 현대인의 욕망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 욕망은 자신을 시장에 내놓으려는 욕망, '좋은 기분'이 되고자 하는 욕망,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며, 동시에 힘들고 갈등이 만연하며 파괴적이고 실망스러운, 불쾌한 현실 및 자아인식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p.7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문구는 철학답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는 현실에서 끊임없이 감탄하고 놀라고 그것 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면서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 의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삶이라면 인간의 본질은 질문이라는 말이 더 맞다. 그러므로 나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될 필요도, 다른 삶들이 만든 이상적인 모습에 나를 끼워 맞출 필요도 없다. 그것은 내가 만든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에리히 프롬은 '상수와 변수'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할 수 있따고 하였다. 인류가 존재할 때 인간에게 변치않고 동일하게 남는것, 본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업적, 창의성, 생산성,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가변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집중적 삶의 결과가 바로 '기쁨'이다. 무기력한 나를 벗어났다는 증거다. 

 

스피노자의 <윤리학 Ethica>를 예로 들면서 모든 사물은 가능한 한 그리고 자신의 힘이 미ㅣ는 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삶을 자각하였고, 자기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의식을 꾸준히 키웠으며, 삶의 목표를 가진 열린 길로 만드는 새로운 물질적, 영적 능력의 발전 가능성을 자기 안에 품은 유일한 피조물이다. p. 49.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간을 자연의 다른 사물과 같은 다른 목적인 국가, 가족, 소유, 권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자기 목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인간에게는 의식적으로 체험하고 감탄하며 자신의 실존적 분열을 해소하는 최적의 방법인 가치와 목표를 발견하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자유와 평등의 정의 역시 이 책을 통해 더 깊이있게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는 인간 존업성의 발견, 혹은 인간 본질 그자체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유한성으로 인한 장애, 제약,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p. 60.

평등은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위인이며 결코 타인을 어떤 목ㅈ거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오늘날의 평등은 무리와 달라서는 안된다는 의미의 동일성이다. ㅏ이가 평등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공포가 지배하는 것이다. p.201.

 

무기력과 반대되는 말이 바로 '자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발적 활동은 감정의 영역은 물론이고 지적, 감각적, 의지의 영역에서도 이루어지는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말한다. 이런 자발적 활동이야말로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안전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달라지고 고립을 견디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첫 단추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자발적 활동에서 개인의 세계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아는 온전해지고 더 강해지며 더 탄탄해진다. p. 82.

 

어쩌면 나조차도 무기력을 겪고 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짜 현실에서 나를 상품으로 내세우고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모난정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감을 합리화 하는 이들은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 중에서 세번째 경우가 가장 심각한 경우라고 한다. 나의 무기력감이 어느 수준인가를 스스로 돌아 보는 것은 삶의 의미, 가치를 찾고 행복한 인생을 꾸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의 3가지 사례

1. 신체적 결함이 있다고 합리화 한다. ex.나는 허약해서 무기력한거야

2. 특정한 인생경험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다면서 합리화 한다. ex. 어린시절 학대를 받았던 경험때문에 할 수 없어. 

3. 상상을 실제로 문제를 만들어서 절망적 상황으로 밀어넣는다. ex.못할거야 혼날거야.. 하는 생각이 실제 행동으로 반영되고 나쁜 결과를 초래해버리면서 실현시켜버린다. 

 

가짜분주함은 무기력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에 비해 부차적이고 부수적인 것들에게까지 확장되며, 정작 해결해야 할 과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현대 직장인이 항상 바쁘다느 핑계는 성과주의, 일을 잘하는 것 처럼 보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기력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

 

또한 부모로서 경계해야 할 부분은 자식의 양육에서 무기력을 부정하는 태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경제활동 능력이 없는 존재다. 부모로서 보살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반면, 신경증환자들과 같이 통제와 권력에 대한 소망의 강화가 발현되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 능력에 바탕을 두고 평가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존중의 정도는 그의 경제적 생산력의 정도에 좌우된다. 경제적으로 어떤 잠재력도 없는 사람은 결국 인간적인 주목을 받지 못한다. 노인을 대하는 태도, 병원에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관찰해보면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냉혹한 무시부터 과도한 친절과 도움에 이르는 모든 감정의 수위가 바로 그것이다.  p.177.

 

태어날 준비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 p. 184.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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