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행복을 위한 시간 계획과 관리에 관심이 많다. 여기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면서 일하는 사회 일원으로 살아가는 워킹맘 혹은 경단녀다. 그녀들이 지나온 유년기와 청소년기, 청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안다.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겪어보았다. 그리고 엄마의 시간을 보면서 대부분의 딸들처럼 엄마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는 반항과 탈출 욕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제목이 <아내의 시간>이다. 아내로서 나의 시간과 비교할 때 남편의 시선에서의 시간은 어떠할까. 이제 막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신경쓸 것들이 마구 늘어나는 시기의 나와 비교할 때 장성한 아이들이 독립한 후의 노년에 접어든 아내의 시간은 많이 다를까.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다.
역시 평범한 부부의 삶은 아니다. 어쩌면 고상한 사진과 그에 맞는 말투가 더 비범한 부부처럼 보이게 했을지도 모른다. 43년 중 13년을 따로 살았던 부부가 다시 동거를 시작하며 서로에게 내세운 원칙은 '무간섭'과 '단순함'이다. 부부가 한집에 서로를 기대어 사는 것을 굳이 동거라 하지 않기에 첫머리에 나온 '졸혼'이라는 의미를 되새김질 할 수밖에 없었다.
남녀간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동반자적인 부분이 커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서로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서로를 보살피며 서로를 존경하고 배려하게 된다. 그래야 그 동반자적 삶이 더 견고해질 것이다.
사진과 아내의 메모가 곁들여진 <아내의 시간>은 남편이 자신의 특별한 삶을 살아가느라 만들어놓은 가정의 부재를 아내가 어떻게 채워왔으며 은퇴한 이후의 삶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다듬는지를 보여준다. 시부모와 친정엄마를 모시고 아이들을 건사하던 아내는 13년 중 8년을 그렇게 혼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면서 지켜왔다. 그런반면 남편은 30대는 야근, 40대는 유학, 50대는 파주에서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 프로젝트에 열중하였다. 가정을 지키고 일상을 버텨내고 그 가운데 후회없이 훌쩍 떠날 수 있는 아내에게 어떤 심정이 들었을까.
젋은 시절 사랑했던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과 은퇴 후 민화와 명상을 통해 생각넘어 자기 직관을 키워 낸 아내의 꼿꼿한 사진을 통해 만회하려고 한 것일까.
그런 남편을 받아들이고 존경하는 것은 아내이므로 내가 비판을 넘어 비난까지 할 필요가 없다. 다만 마흔, 쉰의 아내의 사진은 어디에 있을까. 13년의 부재의 시간을 건너뛰고 <아내의 시간>을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아내는 남편의 상대자이기 보다는 독립된 존재로서 우뚝 서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은 수확이다.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나의 욕망을 위해 열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내는 것도 내 몫이다. 나의 끼니도, 나의 겨울 산행도, 내가 찾은 취미조차도 충분히 누리려면 내 스스로를 지탱해줄 신념과 물리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키워내고 남편의 존경을 받고 다시 돌려줄 수 있는 튼튼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면 아마 지난 13년 동안 많은 외로움, 슬픔, 고단함을 삭히는 무언가가 있었을테다.
돌아가신 엄마에게 불효한 아들의 <사모곡>의 절절함을 닮았다. 있을 때 잘하자, 그 시절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아내를 이해하고 존경하고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멋스러운 것은 사실이라 여겼다.
아내의 메모에서 이 문구가 지금 내가 하는 생각들을 좀 더 확인시켜주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치있다고 느끼는 대부분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배웠어요. " 육아하는 엄마는 자기 인생의 가치를 아이를 키워내는 시간, 아이들에게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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