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하기에 앞서서 몇 년전의 '부장뱅크'를 기억하는가.
KBS 파업여파로 음악방송인 '뮤직뱅크'를 결방 없이 방송하기로 하였는데 파업중인 현역 근로자들을 대신해서 관리직급으로 올라간 선배들이 카메라 연출을 맡으면서 빚어진 말이다. 기존 후배들의 카메라 연출이 음악의 컨셉과 안무에 맞는 다이나믹한 카메라 무빙이었다면, 이번 사태로 오랜만에 카메라 연출을 하게 된 선배들은 다소 다소 정적이고 단조로운 카메라 무빙이라는 큰 차이를 보였고 그 결과는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
임시 대타로 투입되었다지만 '부장뱅크'의 평가가 오히려 환영 받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한 두 아이돌에 집중되지 않고 그룹 전체가 만들어내는 안무 동선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리듬과 멜로디에 맞춰 주요 동선에 따라 절제된 연출이어서 마치 아이돌들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홈마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 춤을 추는 느낌과 분위기가 중요한 노래를 선보인 태민의 'move'는 '부장뱅크'의 무대가 베스트로 회자될 정도다.
돌이켜보면 당시 부장들은 아이돌 1세대 시절 현역이었던 이들로 지금의 팬들못지 않은 팬덤이 가득찬 무대를 만들었던 이들이었다. 비록 최신의 연출 방식보다는 안정적이고 기본인 것으로 결방이 되는 사태를 막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지금의 팬들은 새삼 중년의 현역들을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 인구 비율이 4,50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가운데 미디어에 등장하는 주요 배역들에도 변화가 일었다. 여전히 20여년 전의 꽃미남 배우들이 현역으로 주인공인 드라마와 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조연들이라도 전문성을 가진 주요 배역을 한 50대 이상의 배우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제야 본론으로 돌아와서,
<형사록>은 범죄수사물이면서도 '부장뱅크'의 왕년의 현역이 지금에도 통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라면을 끓여먹는 단촐한 저녁과 겨우 몸 하나 누일만한 작은 고시원의 어두침침한 일상을 마주하면 밝고 찬란한 청춘이 지고 해가 지는 중년의 삶이 이렇게 초라하고 외로운 것인가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 택록은 단순히 몇 번 마주쳤을 뿐이라도 사람들의 심리나 생활을 눈치채고 수사에 실마리를 더하는 예리한 눈썰미에 생각이나 단서를 집요하게 정리하는 기록벽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다. 불의를 참지않고 책임을 지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 두려움에 숨어버리는 작은 하나의 인간을 드러낸다.
이야기는 갑자기 찾아온 살인자 누명과 누군지 모르는 '친구'와의 통화에서 시작되며, 그 휘몰아치는 누명 벗기 게임은 과거의 택록이 만들어 놓았을지 모르는 나비의 날개짓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그 시절 의기양양하고 무서울 것이 없던 청년이 담당했던 사건과 사람들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예상하지 못한 큰 진폭으로 다시 되돌아 온 것이었고, 그 동안 불안과 두려움으로 피하기만 했던 것들을 결국 마주해야만 하게 된 것이었다.
택록은 가족에서 떨어져 나와 기록물로 꽉찬 고시원에서 그저 몇 해만 견디면 연금이 나오는 은퇴를 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는데 이렇게 큰 사건에 휩쓸리고 나면서 오히려 생명력을 가지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새파란 후배들, 억울한 누명을 쓴 청년들을 아끼는 마음은 중년의 현역이 가져야할 또다른 덕목이었고 체력보다 악다구니로 달리는 애처로운 형사의 모습은 이 드라마의 상징과도 같았다.
시즌 2까지 나온 상황에서 드라마의 구도는 항상 미지의 '친구'와의 대결이었고, 그 가운데 과거의 사건이 얽혀 주변의 사람들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호해지는 서스펜스를 경험한다. 소재 측면에서 1,2시즌 모두 적절한 변주였으나 개인적으로 시즌 1에서 진구와의 호흡이 더 인상에 남는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렇다고 누구나 나이만큼 경험하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선배로, 부모로 책임을 다 하는 것은 피하고 싶을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에 후배들을 보살펴야하는 부채의식같은 것이 있어서 더 예민하고 화가 많다. 둘 중 하나만 할 수는 없고 그러는 자신이 못마땅한 것이 불만이 되고 불안이 되어 주변에 딱딱하게 구는 것일테다.
나도 중년이 되어가고 그 가운데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와 추억이 자꾸 쌓인다. 경험과 경력이 나눌만한 가치가 된다면 감사할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좀 더 노력해야 하겠다. 꾸준하고 집요하게 자기의 일을 정리하여 기록한 형사록처럼 나의 생각들과 다짐들과 간혹의 성과를 기록하는 이 블로그도 나름의 아카이브라고 생각하고 보니 또 기쁘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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