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국식 오컬트 무비 '파묘'가 천만관객을 넘었다. 천만관객 막차를 타고 혼자 조조를 보고 나오는 길에 최민식이 연기한 여우가 호랑이의 허리를 다시 이어 붙인 오행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아이가 VOD로 주구장창 보고있는 '엘리멘탈'의 이야기와 비교할 만하다 싶었다.
<파묘>는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 퇴마, 서스펜스 오컬트 무비다. 풍수사, 장의사 그리고 무속인이 등장하는 한국스타일의 오컬트 장르를 선보였다. 장재현 감독의 <검은사제들>, <사바하>와 결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쇼박스의 깨발랄한 오프닝이 음소거 되어 시작하더니 비행기의 듣기 불편한 소음으로 시작하는 것에서 부터 파묘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스튜디어스가 일본어로 말을 거는 장면에서 굳이 영어(도착지가 LA)나 한국어(국적)가 아닌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영화 후반부의 클라이막스와 맞닿아 개연성을 가진다.
이른바 묫자리를 잘못써서 조상이 화가 나 후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장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주요 내용이다. 젊은 무당으로 등장하는 이고은과 이도현은 소위 MZ세대 스럽게 캔버스 운동화를 질끈 묶고 굿을 하기도 하고 전자 담배를 피면서도 신들린 운명을 거스르지 않으며 덤덤하게 자기 운명을 살아내고 있다.
파묘는 총 6개의 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양오행, 이름없는 묘, 혼령, 동티, 도깨비불, 쇠말뚝이 그것인데, 처음 묫자리를 잘못써서 한 부유한 집안의 불행이 주가 되던 이야기가 결국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민족의 정기를 끊어내려는 크고 깊은 저주의 말뚝에 관한 서사로 바뀌는 과정에서 한 문화 속에서의 개개인의 삶의 의미를 전체의 관계로 증폭해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전환에서 호불호가 있었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미디어에서 보았던 장면들은 장의사의 직업적인 독특함이라든지 젊은 무당의 섬뜩한 신들린 굿판 장면이기에 이러한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어떤 심리적 어려움이 있고 그 결과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를 살펴보려고 했던 것이 알고보니 개인의 것이 아닌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을 때의 당황스럴움이 작용하였을것이기 때문이다.
음양오행설은 음양설과 오행설이 합쳐진 것을 뜻하는데, 음과 양이라는 서로 상반된 성질을 이해하고 대립이 아닌 상호의존의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오행은 물, 불, 나무, 금, 흙을 의미하는 水,火,木,金,土를 의미한다. 목금화수토 순서로 목은 금에 지고, 금은 화에 지며, 화는 수에, 수는 토에 지며 다시 토는 목에 지는 배열을 가진다고 알려져있다. '파묘'에서 물에 젖은 나무로 쇠말뚝을 베어내는 장면은 이러한 관계를 역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송대부터 성립된 성리학이 우주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음양오행설을 이었던 것에서 '파묘'의 최민식의 딸이 우주항공학을 전공한 과학자로 자신의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기도 하다.
한편, <엘리멘탈>은 불과 물이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어드벤처 성장 애니메이션이다. 팍사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전작에 비해 스토리의 참신함은 덜하다는 평이 있으나 물,불,흙,공기가 살아가는 세계관이 흥미롭기에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게다가 불은 미국사회에서 이민자들을 의미하고 전통과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의 정서가 크게 반영되어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엘리멘탈'의 뜻은 요소, 본질이라는 뜻을 가졌다. 엘리멘탈에 등장하는 물, 불, 흙, 공기가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는 서로 우호적으로 보이는 물,흙,공기들과 달리 불은 생존의 문제와 함께 배척아닌배척을 받는 존재다. 이민자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소재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 네 가지 요소들은 4원소설에서 온 것이다. 고대 엠페도클레스로부터 흙-테라, 불-이그니스, 물-아쿠아, 공기-벤투스로 이루어진 만물에 대한 이론이 바로 4원소설이다. 화학, 과학, 연금술로 이어지면서 따뜻함, 차가움, 습함, 건조함이라는 성질과 묶여 설명되며 현대적으로는 고체, 액체, 기체, 플라즈마의 상태를 대변한다고 여겨지기도 하였다.
결국 4원소설은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17세기 조선시대에 4원소설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기존 오행설과 비교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배척되었다.
오컬트에서 4원소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물불공기흙 자체가 아니라 그 속성이 상징하는 정서가 대별되기 때문이다. 그것과 관련한 상징과 이미지, 관련 행동을 해석할 수 있고 색조, 분위기, 대결구도를 만들어내기 적절하다.
오행설과 4원소설을 비교하면서 그 구성요소간 비슷한 것과 또 다른 것들도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관계와 요소라는 것이다. 오행설은 이름자체에 '행'이 포함되어 있다. 다섯가지는 따로있지 않고 그것사이의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에 따라 에너지가 움직이는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라는 자아가 있고 그 주변을 감싸는 기운이 다섯가지의 에너지에 의해 시시때때로 달라질 수 있으며 그 기운에 따라 운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한편, 4원소설은 모든 세상은 4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이 것들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존재 자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존재는 상대적인 존재에 의해 그 성질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이다. 불이 뜨겁고 건조하고 발산적인 것은 물이 차갑고 습하며 수렴적인 성질에 의해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이러한 4가지 원소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시도하고 있기에 그 관계가 어떤 방식인가에 따라 이질적인 요소들이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오행설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는 편견, 상식, 규칙이나 문화들에서도 서로간의 관계와 조화를 통해 변화를 가질 수 있고 그 가운데 행복과 평화를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오행설처럼 고정되지 않은 변화의 에너지로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파묘> 역시 신구세대의 관계, 조화와 평화를 이야기한다. 갓난 아이, 임신한 무당, 어린 무당이 잠깐씩이지만 의미있게 등장한다. 묫자리때문에 원인모를 병에 걸린 갓난아이를 구하기 위해 이야기가 시작되고, 캔버스를 신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무선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는 새로운 세대가 구닥다리라고 여겨지는 미신과 관련한 일을 하고, 지관은 자식과 자손들이 살아갈 땅을 지키려는 신념으로 목숨걸고 정령과 싸운다.
<파묘>가 장르 특성상 공포스러운 연출과 섬뜩한 사운드로 두시간동안 오감을 뒤흔들었기에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임에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천만이상의 관객이 들었다는 것은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이 민족이라든지 반일주의 등 거창한 국뽕을 드러내기보다는 단지 우리 후손이 살아갈 땅을 온전히 물려주겠다는 신념에 감동이 더해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목금화수토 오행의 좋은 기운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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