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희노애락으로만 딱딱 나눌 수 있다면 참 편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예전에는 희락만 있고 노애는 없었으면 싶은 적도 있었다. 희노애락의 기쁘고 노여워하고 슬프고 즐거운 것들이 모드 그만의 긍정이나 부정은 또 아니다. 기쁘지만 찝찝하기도 하고 노여워하지만 오해를 풀 수도 있고 슬프지만 개운하기도 하고 즐겁지만 불안하기도 하다. 삶이라는 것이 사진이 아니라서 찰나에도 수백가지의 관점이 있다. 그것이 시간을 따라 앞과 뒤가 생기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추가될 때마다 곱절은 더 복잡해진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한 시기가 있었다. 지금 우울한 시기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앞으로 우울해질 예정인 사람들도 있다. 요즘의 나는 우울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기 전에는 <나만 이렇게 우울할 리 없잖아>라는 책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이 책은 우울한 사람들이 반가워할 책이지만 우울함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우울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우울감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며칠을 오며 가며 이 책을 읽고 나니, 덮어두고 잊고 있었던 내 우울했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의 인터뷰이, 인터뷰어의 경험이 모두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관점이나 내가 지내온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이런 것이었었나보다 하고 깨닫게되기도 했다.
나도 우울한 적이 있었다. 곱씹어 보면, 일을 할 때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스스로의 자존감이 떨어졌을 때였다. 또 연인이나 친구, 직장동료나 상사와의 관계에서 불편함이나 오해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우울감을 만들 때도 있었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 바라보는 아이를 두고 혼자 어딜 갈수나 있나, 진탕 술을 마실수나 있나 밤을 새서 공부를 하거나 멀리 출장을 갈 수나 있나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제한적이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정작 잘 할 수도 없는 것들임에도 스스로 압박감을 느끼고 괴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대로 되지 않던 일들 중 어떤 것은 포기하고 어떤 것은 재도전해서 성취했다. 연인이나 친구,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평생 언제고 좋은 관계로 계속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더니 편해졌다. 스스로 거리를 두기도 하고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연결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을것이라 더이상 욕해줄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아이도 이제는 나와 산책을 나가고 함께 책을 읽고 내가 맥주 한잔을 마시면 자기는 사이다 한잔을 따라 '짠'을 하는 사이가 될만큼 제법 사람다워지고 있다. 그 사이 나는 박사 학위를 땄고 직장에 취직도 하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우리학교에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겸임교수도 되었다.
분명 더 많은 좌절감과 불안이 있고 무기력한 날들이 더 길었음에도 원하던 결과가 드문 드문 생기다보니 기쁘고 행복한 것들에 대해서만 기록을 하는 것 같다. 마치 진짜 삶이 아닌 그림같은 삶을 전시하는 인스타그램처럼 말이다.
현미경으로 보면 나에게도 수많은 불안과 우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이나 강박, 우울이 생각보다 오래 진득하게 내 삶에 자리 잡아버릴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앞으로의 불안한 나를 위해서, 불안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 불안과 우울은 언제고 우리 삶 에 있었다. 그것을 굳이 드러내고 그것만 이야기하지 않고 그것은 지우고 없애야 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해리포터의 '볼트모트'처럼 언급해서는 안되는 대상처럼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하고 또 그것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을 대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불안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도 그 증상이 서로 다르기에 그것에 맞는 대응방식이 제각각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나만 이렇게 우울할 리 없잖아>은 필요했던 책이다. 이 책의 대상은 우울감을 느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이겠고, 그 다음은 혹시나 앞으로 내가 우울할지도 모르거나 또 주변에 우울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텍스트로 묶여 나오는 책이라는 형식이 사람에 따라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이 책은 얇고 가벼운 형식이라 우울한 사람들도 쉽게 읽어 낼 수 있다. 역시 스스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필자들이 쓴 책이라 대상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든 책이라 생각했다. 또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 낸것도 좋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불안과 우울감이 있을 것이다. 나의 우울증이 어떠한지 어떤 과정을 지나왔고 주변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3명의 인터뷰어가 공감하고 같은 상황에서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지점이 좋았다. 3명의 인터뷰어가 한사람의 인터뷰이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그 경험에 동의를 하고 함께 자학스러운 농담을 주고 받는 그 편한함이 이 책을 읽고 있을 우울한 독자에게도 전해지는 듯 했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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